_고뇌

쓰담

by 은수

괴롭게 번뇌하는 것을 고뇌라고 한다. 나는 지금껏 쓴맛을 나타내는 쓸 '고'에 두뇌를 말하는 '뇌'자를 써서 뇌에 쓴 생각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뇌가 맛보기에 쓴 생각들이라는 점에서 원래의 의미를 충분히 담아낸 맛깔스러운 해석이라 생각했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충분히 달달한 코팅을 하지 못하여 쓴맛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기술력 낮은 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생각이건, 그것이 고통 맛 번뇌라 할지라도 그 끝에는 해탈의 경지가 있으니 고뇌가 쓰디쓴 약 이래도 결국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물을 파 들어가는 일을 생각해 본다. 땅을 파서 어느 정도 깊이가 되기 시작하면 가장 위험한 것은 우물벽에서 떨어지는 낙석과 질식일 게다. 잔부스러기 돌멩이도 아프다. 마른땅을 파 들어가는 깊이가 깊을수록 떨어지는 낙석은 중력가속도의 힘으로 기하급수적인 속도를 만들고 우물 파는 이들을 위협한다. 그래서 우물의 깊이보다 중요한 건 우물벽의 축조일 테다. 튼튼한 나무와 석재로 옹벽을 발라 무심코 지나쳐버린 낙석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야 안전할 수 있다.


인간의 사유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생각의 물이 나오게 깊게 사유하면 그것이 아무리 좋은 생각일지언정 무심하게 지나쳐버린 생각의 우물벽에서 떨어진 낙석은 뒤에서 나를 덮칠 수 있다. 부스러기처럼 떨어져 내 뒤를 때리는 작은 불안의 파편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앞으로 떨어질 수 있는 거대한 낙석, 붕괴의 징조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유를 하되 깊이만을 목표로 하면 낙석의 위협을 고스란히 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자아가 위험해질 수 있다. 심지어 수직의 우물에서는 피할 곳도 없다. 고민이 많은 사람이 겪는 공황은 어쩌면 생각의 우물에 갇혀 주위를 살피지 못한 이들의 위태로운 불안과 재해일지 모른다.


삶의 목마른 대지를 적실 물을 찾기 위해 사유의 우물은 누구나 파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깊이에만 매몰되어 옆을 바라보지 않고 파 들어가면 낙석의 위협과 숨 쉴 산소의 고갈로 숨이 막혀오기 쉬워진다. 사유하는 사람은 생각의 측면을 바라보며 옹벽처럼 생각의 과정을 단단하게 고정해야 한다. 또한 나의 안전을 확인해 줄 주위의 사람과 끊임없이 소통을 계속하며 한숨 돌릴 공기를 공급받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깊어진 사유 속에서 숨이 막혀 고민에 질식하지 않고, 불안의 진동으로 떨어져 나온 낙석에 큰 상처를 받지 않게 될 것이다.


생각의 공기를 불어넣어 줄 사람이 꼭 가족일 필요도, 친구일 필요도 없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긍정해주기만 하는 yes맨은 위험하다. 오히려 작은 부스러기 떨어지는 흔들림을 감지하여 예민하게 no를 외쳐주는 사람이라면 그걸로 족하다. 소셜미디어의 정체 모를 그들이래도, 그들의 독설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고개를 들어 얼마나 사유의 깊이가 파 들어갔는지, 그리고 생각의 측면이 어느 정도 탄탄한지 고개 돌려 바라보게 해 줄 누군가면 족하다. 그래서 평지 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지금 그들에게 우물파기 작업을 하고 있다는 신호로 자꾸 그들에게 글과 소리를 치며 알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글을 쓰자. 천연 암반수가 여러분의 목을 적셔 줄 그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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