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구슬 속 미래

원하는 삶이 이루어진 어느 날의 미래

by 내면여행자 은쇼

그날 아침도 여느 때처럼 시작되었다. 오전 7시, 알람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창밖으로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침대에 누워있다가, 평소처럼 일어나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셨다.


그리고 책상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작은 유리구슬이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내게 남긴 유일한 유품이었다. "너에게 꼭 필요한 순간이 올 거야"라고 하셨지만, 그동안 나는 그저 장식품처럼 서랍 한구석에 고이 모셔두기만 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처음으로 그 유리구슬이 달라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그것이 나를 끌어당기는 듯했다. 나는 유리구슬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이 이상하리만큼 선명했다.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구슬 속에서 희미한 빛이 일더니, 마치 작은 영화관의 스크린처럼 어떤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빛이 점점 선명해지면서 나의 심장도 덩달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내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3년 후의 내가 있었다. 처음 보는 공간이었지만, 묘하게 친숙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공간이 현실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책과 음악이 가득한 아늑한 공간에서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창가에는 녹음이 우거진 나무들이 보였고, 턴테이블에서는 재즈가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빌 에반스의 'Peace Piece'였다. 벽면의 명함꽂이에는 '마음항해사'라는 타이틀이 새겨진 명함이 꽂혀 있었다. 그 순간 가슴 한켠이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책상 위에는 방금 마무리한 원고가 놓여 있었다. 표지에는 'AI와 함께 쓰는 자전적 소설 가이드북'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옆으로 몇 권의 책이 더 보였다. 내가 쓴 자전적 소설집질문카드 시리즈였다. 책등에 적힌 내 이름을 보는 순간,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창 너머로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작은 모임 공간이 보였다. '마음탐험대'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고, 사람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울컥하며 이야기를 하자 다른 이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미래의 내가 살짝 미소 짓는 게 보였다.


구석에 놓인 화이트보드에는 다음 주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자전적 소설 쓰기 강의', '올레길 걷기 모임', '독서모임'... 그리고 '요즘사 인터뷰 촬영'이라는 글자도 보였다. 바쁜 일정이었지만, 하나하나가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일들이었다.


주차장에는 미니쿠퍼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뒷좌석에는 등산복요가매트가 놓여 있었다. 조만간 어디론가 떠날 모양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고 오겠지.


책장에는 겨울서점님과 알로하융님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롤모델들의 책을 보며 미래의 내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구슬 속 미래의 내가 고개를 들었다. 방문객은 새로운 질문카드 샘플을 들고 온 디자이너였다. 텀블벅 펀딩을 앞두고 마지막 점검을 하러 온 것이었다. 카드를 펼쳐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설렘과 뿌듯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미래의 나는 평온해 보였다. 때로는 바쁘고 때로는 고단할 테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내면 여행을 돕는 일에서 깊은 보람을 느끼는 듯했다.


유리구슬 속 영상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구슬을 다시 서랍에 넣었다. 창밖의 보슬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고, 맑은 하늘이 보였다. 가슴 속에서는 여전히 설렘이 가득했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늘의 글감은 '유리구슬 속에서 본 미래'였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먼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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