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05.18의 평행세계

by 내면여행자 은쇼

새벽에 잠이 깼다. 아니, 깬 것 같았다. 시계는 보지 않았다. 어차피 이 시간은 현실과 꿈의 경계쯤이니까. 침대 옆 책장에서 『소년이 온다』를 꺼내들었다. 한동안 읽지 않고 미뤄두었던 책이었다.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두 개의 현실을 동시에 보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도청 앞에서 총에 맞은 동호가 쓰러지고, 다른 쪽에서는 그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곳의 동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정대와 웃고 있었다.


두 현실이 겹쳐 보였다. 도청에서 마지막을 맞이한 동호는 여기서는 중년의 교사가 되어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학생들 앞에서 이야기했다. 평화와 인권에 대해,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 대해. 은숙은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진열대에는 『소년이 온다』 대신 다른 책들이 꽂혀 있었다. 그녀는 가끔 동호의 서점 나들이를 반갑게 맞이했다.


"넌 왜 우리의 이야기를 읽지 않았어?" 책 속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아마도 두려웠던 것 같아." 내가 답했다.

"두려움이 나쁜 건 아니야. 그건 네가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니까."


이상했다. 분명 이 책을 읽은 적이 없는데, 그들의 삶이 내 안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흐르고 있었다.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비극적인 현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누렸어야 할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건 어쩌면 이런 평행우주를 상상하고, 그 상상을 통해 현실을 더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평화로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를.


창밖에서 새가 울었다. 아직 어둡지만 곧 아침이 올 것이다. 나는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이제 나는 안다.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건, 결국 우리 세계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마주하는 일이라는 것을.

밤이 저물어 갔다. 하지만 나의 질문들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어떤 세계에서는 이 질문들도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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