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절이라는 물감으로 세상을 칠하는 마법사다. 초보 마법사였던 때, 나는 극단과 극단을 오가는 서투른 마법사였다. 어떤 날은 모든 것을 환하게 비추는 마법을 썼다. 모든 이에게 화려한 색을 입히려 노력했다. 말투는 한없이 다정했고, 미소는 늘 넘쳤다. 지나가는 경비 아저씨부터 택배 기사님, 편의점 알바생까지. 모두에게 눈부신 친절이란 마법을 부렸다. 상대방에게서 피어오르는 까만 연기를 만날 때면, 나는 그것에 더 화려한 색을 입히려 애썼다. 상대가 불친절할수록 나는 더 친절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계속되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완전한 소진의 시간. 더 이상 마법을 부릴 수 없을 만큼 지쳐버린 날들. 그때의 나는 반대쪽 극단으로 치달았다. 무뚝뚝한 잿빛 마법사가 되어 모든 색을 거둬들였다. 말수는 줄어들었고, 웃음도 잃어버렸다. 세상은 흑백으로 물들었다.
그러다 며칠 뒤면 또다시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렇게 차갑게 굴면 안 돼.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지.' 다시 화려한 색을 뿌리기 시작했다. 끝없는 친절의 롤러코스터였다. 환한 빛에서 짙은 어둠으로, 다시 환한 빛으로. 그 극단의 진자 운동은 나를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어느 날 문득, 중요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친절은 나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물감이라는 것을. 내가 가진 물감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치지 않을 만큼만 써야 한다는 것을. 그 날 이후 나는 철저히 이기적인 마법사가 되기로 했다.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첫 번째 마법. 이제 나는 모든 이에게 부드러운 파스텔 톤을 칠한다. 그것이 기본이다. 친절과 무뚝뚝함의 중간쯤에 있는 예의바름이다. 극단으로 치닫지 않아 안정감을 주는 존중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두 번째 마법. 파스텔 기반 위에 어떤 색을 더할지는 내 마음이 결정한다. 자연스럽게 물감을 샘솟게 하는 이들에게만 선명한 색을 더한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귀 기울이게 되고, 그들의 성장이 보고 싶어서 응원하게 되고, 그들과 함께 있으면 즐거워서 웃음이 나온다. 친절하게 대하고,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인정할 때마다 상대방의 얼굴에서 형형색색의 빛이 피어난다. 그리고 그 빛나는 순간이 고스란히 나의 행복이 된다. 내 마법은 마음이 향하는 곳에 가장 다채로운 색을 만든다.
나를 지키는 세 번째 마법. 까만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차가운 말투, 날카로운 시선을 돌려주는 이들에게는 더 이상 내 물감을 쓰지 않는다. 억지로 친절을 베풀어봤자 물감만 낭비할 뿐이다. 처음 칠한 파스텔 톤을 그대로 둔다. 거두지는 않을게. 나는 자비로운 마법사니까. 나까지 색을 뺏어버리면 너는 정말 무채색이 될테니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오늘 하루 동안 써낸 마법들이 밤하늘의 오로라처럼 춤춘다. 은은한 파스텔 톤부터 깊이 있는 원색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어울리는 색들. 그 모든 색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어 세상으로 너울너울 퍼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