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보는 법을 잊고 살았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사람.
한 번 본 모습으로
그 사람의 전부를 재단했다.
나 자신에게도 그랬다.
늘 좋은 면만 보여야 한다고 강요했다.
그러다 인간본을 발견했다.
늦은 퇴근길이었다.
평소 지나치던 문구점 안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가게 구석에 진열된 투명한 지구본.
그런데 뭔가 달랐다.
"이건 인간본입니다."
주인이 말했다.
"지구본처럼 생겼는데요?"
"네, 하지만 사람을 담는 지구본이죠."
손으로 만져보라고 했다.
그러자 주인의 모습이 투명한 구 안에 담겼다.
마치 지구본처럼 천천히 자전하고 있었다.
"보세요, 지구가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돌면서
태양 빛을 받는 쪽은 환하게 보이고
반대쪽은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죠.
인간본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사람은 이런 구를 품고 있어요.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모두 가진 채로요.
당신이라는 태양이 어느 쪽을 비추느냐에 따라
그 면이 밝아져서 보이게 되죠.
한쪽이 환히 보일 때
다른 한쪽은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거예요."
다음 날부터 세상이 달라보였다.
늘 다정하기만 하던 팀장님이
신입의 실수에 차갑게 쏘아붙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제야 알았다.
내 시선이 그의 긍정적인 면만 비추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그림자 속 다른 면이 보이기 시작한 것뿐이라는 걸.
매일 얼굴 붉히며 싸우던 두 과장님이
야근하는 후배 걱정에 서로 먼저 남겠다고 다투는 걸 보았다.
깨달았다.
내가 그들의 부정적인 면만 봤던 시간
다른 이들은 그들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 있었다는 걸.
연애를 시작한 친구를 만났다.
"남자친구랑 나는 운명이야.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없어."
일주일 전의 말이
"말이 안 통해. 끝까지 자기가 맞대. 최악이야."
로 바뀌었다가
한 달 뒤엔
"근데 걔가 먼저 미안하다고 하더라. 의외였어."
로 변했다.
이해했다.
그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
친구의 시선이 그의 다른 면을 비춘 것뿐이라는 걸.
우리는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다른 면을 보고 있을 뿐이라는 걸.
거울 속 내 모습도 보았다.
나도 천천히 자전하고 있었다.
친절한 면과 이기적인 면.
다정한 면과 차가운 면.
모두 다 나였다.
누군가 나를 싫어할 때면 생각했다.
'아, 저 사람에게는 지금 나의 부정적인 면이 환하게 보이는구나.
괜찮아, 조금만 기다리면 다른 면도 보여줄 수 있어.'
더 이상 완벽해지려 애쓰지 않았다.
나도 긍정과 부정을 모두 가진
작은 행성일 뿐이니까.
주말에 다시 문구점을 찾았다.
지구본 코너에는 쪽지 한 장.
'우리는 모두 다양한 면을 품은 작은 행성입니다.
각자의 축을 중심으로 자전하며
때로는 서로에게 빛을 비추는 태양이 되어
함께 공전하고 있죠.
당신의 시선이 누군가의 한 면을 비추고
그의 시선이 당신의 한 면을 비춥니다.
서로의 자전을 존중하며
모든 면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세요.'
집에 돌아와 소중한 깨달음을 기록으로 남긴다.
'오늘의 깨달음:
인간은 행성. 긍정과 부정, 또는 그 사이 어디쯤의 특성을 모두 품은 입체적인 다면체.
언제나 자전하며 면면마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서로의 태양이 되어 빛의 시선이 닿는 쪽을 밝게 비춘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림자 속의 이면 또한 이해한다.
그저 있는 그대로 자전하며
서로의 모든 면을 받아들이자.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우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