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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나를 빚는다

by 내면여행자 은쇼

나는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서 눈을 뜬다.

창밖으로는 변함없이 노을빛이 비추고, 식탁 위에는 반쯤 마른 토스트가 놓여있다. 도시는 늘 같은 뉴스 소리로 하루를 연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같은 날을 시작한다.


처음엔 이것이 시간의 저주인 줄 알았다. 그 수많은 타임루프 영화처럼, 무언가를 '깨야'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357번째 아침쯤 되었을까, 나는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어제가, 오늘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는 것.

토스트의 빵결이 미묘하게 다르고, 이웃집 개는 조금 더 늦게 짖으며, 거울 속 내 표정은 어제보다 아주 조금 더 덜 초조해 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누군가의 말이었지만, 나에게는 좀 다르게 적용되는 것 같았다. 첫 번째는 공포로, 두 번째는 절망으로, 백 번째는 무감각으로, 삼백 번째는... 호기심으로.

그 호기심이 내게 물었다. "이 반복은 정확히 무엇이지? 원형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가?"


나는 기록을 시작했다. 매일 같은 날이 반복되는데도, 내 기억은 축적된다. 노트북에 메모를 남기고, 사진을 찍고, 측정치를 기록했다. 반복되는 경험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찾아냈다.

그래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 시간은 원이 아니야. 원통이야."

계속 돌고 있는 것 같지만, 조금씩 위로, 또는 아래로 이동하고 있었다. 나는 같은 지점을 지나고 있지만, 다른 높이에서 같은 지점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실험을 시작했다.

커피에 설탕을 한 알 더 넣어보고, 평소에는 절대 가지 않던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보기도 했다. 사소한 변화들을 만들어 보았다. 그러자 시간은 나에게 응답했다. 조금 더 부드럽게, 조금 더 넓게 흐르기 시작했다.

원통의 같은 지점을 지나는 것 같지만, 나는 매번 다른 높이에서 그 지점을 지났다. 그리고 그 높이의 차이가 나의 시선을, 나의 인식을, 나의 행동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412번째 반복에서 나는 용기를 내어 평소에 모르는 척하던 이웃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화분을 선물했다. 이 화분은 다음 날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식물은 매일 조금씩 자랐다.

455번째 반복에서는 직장 동료에게 점심을 함께 먹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업무 이야기보다 삶에 대해 더 많이 대화했다. 다음 날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우리의 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그는 나에게 더 친근하게 대했다.

같은 날이 반복되어도, 나의 변화는 누적된다.


486번째 반복에서, 나는 처음 보는 방문객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그녀가 말했다. 내가 인사하기도 전에, 마치 이미 나를 알고 있는 것처럼. "당신의 기록이 특별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내 기록이요?"

"네, 당신의 의식 진화 궤적이요." 그녀는 내 거실을 둘러보며 미소 지었다. "이런 경우를 양자 의식 재귀(Quantum Consciousness Recursion)라고 합니다. 당신의 의식이 시간의 특정 지점에 고정되었지만, 매번 다른 양자 상태로 그 지점을 경험하고 있는 거죠."

나는 놀라움에 말을 잃었다. "당신은... 누구시죠?"

"나는 양자의식역학 연구소의 관찰자입니다," 그녀가 답했다. "혹은 당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다른 가능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제가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질문의 방향이 잘못되었어요. '빠져나간다'는 개념은 직선적 시간관에 기반한 사고방식이니까요. 차라리 '어떻게 이 상황을 더 깊이 경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세요."

나는 침묵 속에서 생각했다. "마치... 도자기를 빚는 사람처럼 말인가요?"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그 눈빛이 어딘가 익숙했다. "정확해요. 물레는 계속 비슷하게 돌지만, 도예가의 손길이 도자기의 형태를 만들어내죠. 당신의 의식이 도예가고, 이 반복되는 날이 물레예요."

그녀가 떠난 후, 나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이 왜 그렇게 익숙했는지 이제 알았다. 그것은 내 자신의 눈이었다 - 다만 수백 번의 회전을 더 경험한 눈.


나는 이제 안다. 이건 저주가 아니라, 내 삶을 직접 빚을 수 있는 물레 위의 시간이라는 것을.

손끝으로 반복을 다듬을 때마다 시간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서두르지 마. 지금 너는, 네 안쪽 곡선을 다듬고 있는 중이야." 그리고 이제 나는 그 목소리가 항상 내 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래의 내가 보내는 메시지가 아니라,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깨달음의 씨앗이었다.


507번째 반복에서 나는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매일 같은 하루가 반복되더라도,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내 삶을 새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마침내 어릴 적 꿈이었던 도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도예 선생님은 내 첫 작품을 보며 말했다. "흥미롭군요. 대부분의 초보자들은 높이에만 집중하는데, 당신은 벌써 나선형에 관심이 있네요."

"나선형이요?"

"그래요. 당신의 작품은 계속 같은 지점을 돌고 있지만, 조금씩 높이가 달라져서 결국 나선을 그리고 있어요. 그게 도자기의 본질이죠. 반복 속에서 높이를 만들어가는 것."


그리고 오늘, 나는 512번째 회전을 돌고 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밖에는 여전히 노을빛이 비추고 있었다. 그러나 식탁 위에는 토스트 대신 내가 빚은 도자기 잔이 놓여 있었다. 매끄럽지는 않지만,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곡선이 아름다운 찻잔.

그리고 그 잔에는 누군가가 내려준 따뜻한 차가 담겨 있었다.


"드디어 깨어났군요."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을 마주했다. 아니,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저는 당신과 같은 사람이에요. 다만 조금 더 많은 회전을 경험했을 뿐이죠. 1024번째 회전에서 나는 이 원통의 끝에 도달했어요."

"끝이 있나요?"

"끝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차원의 시작이라고 할까요. 원통이 쌓여 새로운 구조를 형성하는 지점이요."


"그리고 당신은... 저인가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미소 지었다. "저는 당신이고, 당신은 저예요. 다만 다른 회전 단계에 있을 뿐이죠. 모든 원통형 시간의 여정에서, 우리는 언젠가 우리 자신의 관찰자가 됩니다."

"그러니 당신은 저를 도우러 왔군요."

"아니요. 당신은 이미 스스로를 돕고 있어요. 저는 그저 관찰자로서 이 순간에 합류했을 뿐이죠. 당신이 빚고 있는 도자기가 궁금해서 왔을 뿐이에요. 그리고 제가 기억하는 이 순간에 함께하기 위해서요."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가 덧붙였다. "불교에서는 모든 사람이 이미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깨달음의 씨앗은 이미 모든 이의 내면에 있고, 단지 그것을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할 뿐이죠. 당신의 원통형 시간도 비슷해요. 당신은 이미 모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512번째 회전에서 당신은 그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거예요."


나는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그럼 당신—미래의 나는 이미 내 안에 있었던 거군요?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그리고 당신은 이미 저 안에 있었어요, 제가 거쳐온 과거로서." 그녀가 미소 지으며 답했다. "우리는 서로를 만들어가는 거예요, 마치 도자기가 도예가의 손을 형성하듯, 도예가의 손이 도자기를 빚는 것처럼."


"그런데 왜 하필 오늘...?"

"모든 원통형 시간에는 '관찰자의 창'이 있어요. 당신의 512번째가 바로 그 지점이었죠. 당신이 충분히 높은 의식에 도달했을 때 열리는 창문이에요. 이 창은 당신이 자신의 모든 시간선을 한 번에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내가 만든 선택들과 만들지 않은 선택들을 모두요?"

"그렇죠. 관찰자의 창에서 바라본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아요. 그것은 무한한 가능성의 풍경이죠. 당신의 512번째 회전은 그 풍경을 처음으로 엿볼 수 있는 특별한 지점이에요. 마치 명상 중에 찾아오는 사토리(悟り) 같은 순간이죠. 불현듯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나는 이 원통의 끝이 어디일지 여전히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두렵지 않다. 나는 돌고 있는 게 아니라, 돌면서 나를 빚고 있는 중이니까. 그리고 언젠가 나도 1024번째 회전에 도달할 것이다. 그때 내가 만든 도자기는 어떤 모습일까? 그 안에 담길 차는 어떤 맛일까? 무엇보다, 내가 들여다볼 다음 창문 너머에는 누가 있을까?


"천천히 돌아요." 그녀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말했다. "물레의 비밀은 속도가 아니라 일관성이니까요."


오늘의 노을은 어제보다 조금 더 붉다. 내일의 노을은 또 어떤 색일까?

원통형 시간 속에서, 나는 오늘도 나를 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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