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바다는 고요하지 않다 | EP .1

새벽 바다는 고요하지 않다

by 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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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새벽 속 모래 틈 사이에 남아 있는 한낮의 열기가 일렁이며 뜨겁다. 거센 파도는 바위를 매섭게 강타하며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를 낸다. 맑은 하늘 구름 속 번뜩거리며 번개가 내려치는 새벽 바다의 풍경은 강렬하다.


새벽 준비 운동 시간 전, 해변가 한구석에 앉아 흘러가는 풍경들을 보며 항상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그림을 그리다 게임 원화가 로 회사 취직까지. 그림 한 길만 달리며 살았던 내가 어쩌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공공근로로 해변가 청소를 하게 되었을까. 시작부터 잘못되었나? 어 디서 틀어진 걸까? 열정과 의욕 없이 그저 흘러가는 데로 살아서 그렇게 된 걸까? 수술 후 6개월이 지난 왼쪽 손목을 살살 문지르며 격하게 몰아 치는 새벽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와 함께 내 생각도도 일렁거렸다. 깊은 사 색에 빠질 새도 없이, 청소를 시작하면 격한 파도와 같은 잡념은 힘겨운 육 체노동과 함께 씻겨져 내려간다. 힘든 일을 하면 걱정이 사라진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해운대 바다를 놀러 올 때마다 생각 없이 노닐었던 산책로 보도에 모래 가 없었던 이유는 누군가가 쓸었기에, 모래사장에 담배꽁초를 드물었던 이유는 누군가가 치웠기에, 성난 파도에 떠밀려온 몇 톤의 미역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건 누군가가 쓸어 담았기에, 유흥가에서 뿌리는 길바닥 성 인 전단지가 없었던 건 누군가가 치웠기에, 그래서 내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을 그때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나 해운대에 20년 이상 살면서 해운대 해안가에 미역이 있다는 사실 을 처음 알았다. 비바람이 몰아친 다음날, 출근을 했더니 담당자가 그날 출 근한 모든 인력에게 미역을 주워야 한다고 했다. 포대 5장 이상 챙겨주며 떠밀듯 모래사장으로 내려갔다. 모래사장에 도착한 나의 눈에는 해안가 주 변으로 새카만 산을 이룬 거대한 미역들이 보였다. 그 새카만 산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두세 명이 갈고리를 들 고 미역을 긁어 한 곳으로 모아주면, 남은 인력은 쭈그려 앉아 모인 미역을 포대에 쓸어 담는다. 물을 머금고 살아있는 미역은 처음 본 지라 한 줄기만 으로도 혼자 들기 버거운 무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는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움직인다. 한 명이 포대를 잡고 입구를 벌리면 나머지 한 명이 미역을 쓸어 담아 준다. 미역이 가득 담긴 포대는 남자라도 혼자 들 수 없 어 두 명이서 끙끙대며 옮겨야 한다. 일이 마친 후 포대에 담은 미역이 2-3 톤 정도가 된다는 팀장의 말을 들었다.


인도에 모래가 쌓이지 않게 치워주는 사람.

모래사장의 쓰레기가 눈에 띄지 않게 줍는 사람.

파도에 떠밀린 몇 톤의 미역을 손수 포대에 쓸어 담아 치우는 사람.


인근 상가의 성인 전단지를 어린아이가 볼 세라 말끔하게 쓸어 치워 주는 사람들의 존재를 몰랐던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해안을 덮은 그 수많 은 쓰레기들이 행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고요 속에 그림자처럼 움 직여 준 청소 노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개월 동안의 힘든 노동 속에 배운 것이 있었다. 내가 이유 없는 편리함을 누렸다는 것은 내가 없는 시간 들 속에 항상 노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매달 최저 시급을 받으며 나는 고요 속 그림자 노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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