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바다는 고요하지 않다 |EP .2

고요를 원하는 사람들

by 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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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후 한동안 회복이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는 꽤 나쁘지 않았다. 지방이라 연봉 테이블은 낮았지만 본가와 가까운 위치로 오히려 돈을 아꼈고, 점심시간마다 재밌 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했다. 사수가 이직 한 뒤 혼자서 6개 월은 고생했지만 어느덧 부사수가 생겨 업무가 원활해지며 매일 정시 퇴근 할 수 있었다. 내가 맡은 업무를 나름 잘한다고 생각했다. 2년 반 동안 한 팀에서 근무했기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고, 해 외 거래처와 혼자서 소통하며 업무를 쳐냈다. 하지만 팀의 PM(Project Manager, 피엠이라 표기)이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평소와 같이 분주히 일하고 있던 어느 날, 슬랙(개발자들과 직장인들을 위 한 업무용 채팅 협업툴)에 알림이 와서 확인하니 피엠이 개인 면담을 요청 하며 회의실로 날 호출했다. 새로 온 피엠은 잦은 회의와 개인면담을 했었 기에 별생각 없이 회의실로 향했다. 그리고 피엠의 입을 통해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내가 일을 못 쳐내서 함께 근무하는 팀원들에게 피해 를 끼쳤다는 것이었다.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나로 인해 팀에 피해가 갔다면 매달 짜는 스케줄 에 차질이 생겼을 것이며, 마감에 맞춰 작업물을 제때 전달하지 못해 개발 자들의 일이 밀렸을 것이다. 하지만 스케줄과 더 빠른 마감으로 일을 전달 했고, 팀의 개발자들과 소통도 항상 원활했다.


다음으로 혼란스러웠던 건 인사팀에서 나와 피해를 입은 팀원들을 따로 불러 정황을 확인하지 않은 채, 그저 피엠의 의견에 따라 권고사직을 진행 했다는 점이다. 이전에 피엠과 진행한 개인 면담에서 피엠이 다른 팀원들 은 매번 힘겹게 야근을 하는데, 늦게 까지 힘들게 일하는 그들을 생각해 보 라고 넌지시 나에게 스쳐가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항상 칼같이 퇴근했던 나에게 피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이미 나에게 던진 일종의 경고였 고 나는 그것을 무시했던 것이다.


권사 처리는 차질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인사팀과 대화 를 나누는 자리였다. ‘이전에 근무한 사수가 이직한 후 6개월 동안 홀로 새벽까지 야근하면서 모든 스케줄을 마감에 맞춰 처리했는데 내가 잘린 이 유가 업무 미숙이라는 것이 정말 억울하고 수치스럽다.’라고 견해를 밝혔 다. 하지만 인사팀에게 돌아온 것은 모호한 대답뿐이었다. 퇴사 날, 아침 회의 시간에 나는 팀원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일을 못해 모두에게 민폐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며 훗날 어디선가 다른 회사에서 뵙게 되면 그때는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하겠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슬랙으로 팀원 몇 분이 메시지를 보냈는데, 대부분 피엠과의 면 담 때 그런 의도로 말한 적이 없다, 혹은 그런 말은 금시초문이라는 내용들이었다. 실상은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저 권사라는 결과는 변함없을 뿐이다.


해변가 청소 때 나에게 다가와 많은 청소 인력은 세금 낭비라 했던 행인과 권고사직을 시킨 피엠은 다르면서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 는 지금은 그들에게 가진 나쁜 감정들이 희미해졌음을 느낀다. 그들도 그 저 그 자리에서 본인의 역할을 열심히 수행했을 뿐이다. 낭비되는 세금을 위해 정의로운 말을 던지는 시민, 회사를 위해 일에 열정 없어 보이는 직원 을 자른 팀의 책임자. 누구나 마음속 요동치는 파도를 안으며 평화로운 고요를 유지하기 위한 결정과 행동을 한다.


나 또한 나를 집어삼킬듯한 격렬한 파도를 안으며 매일매일 고요해지기 를 소원을 담아 담담하게 해변 청소를 이어나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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