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몽스 Jan 13. 2020

[리뷰] 영화 『윤희에게』를 보고

뭐든 더 이상 참기 어려울 때.

  "가끔 네 꿈을 꿔"


  쥰은 과거의 연인인 윤희에 대한 꿈을 꿀 때마다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 그저 쓸 뿐, 어느덧 가정을 차렸을 윤희에게 보낼 용기를 내진 못한다. 쥰의 예상대로 윤희는 한국에서 결혼을 했으며, 자신을 닮은 딸 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윤희에 대한 꿈을 꾼 쥰은 편지를 쓰고, 방에 둔 채 일을 하러 나간다. 우연히 쥰의 방 청소를 하러 온 고모는 그 편지에 쓰인 '윤희'란 이름을 보고 고민 끝에 우편함에 편지를 부친다. 이렇게 20년이 지나도록 연락이 닿지 않았던 윤희와 쥰의 인연은 다시금 연결된다.

  용기란 것이 꼭 자신으로부터 발현되어야하는 것일까? 『윤희에게』를 보고 이와 같은 물음이 생겼다. 용기를 한가지로 단정지음으로써 얻게 되는 유일한 것은  '용기란 대단히 어려운 것'이란 인식을 널리 퍼뜨리게 되는 것임이 틀림없다. 우연으로 이루어진 만남도, 쥰이 쓴 편지가 없었더라면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의 연인을 회상하여 마주보기란 세월이란 마모가 아무리 진행되어도 어렵긴 마찬가지이다. 쥰은 꿈을 통해 윤희를 만나고 이를 편지로 적어내어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전한다. 펜으로 편지지를 꾹꾹 눌러담을때마다 윤희의 모습, 과거의 '우리'의 모습은 선명해졌을 것이다. 흐린 기억을 마주하기란 크게 어렵지 않으나,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필름과 같이 선명한 기억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준비를 하고 마주봐도 어렵기마련이다. 쥰은 윤희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것 자체로 큰 용기를 낸 것이다. 이 거름이 없었다면 윤희와 쥰은 과거에 머무르고 추억하다 잊혀질 기억이 되었을 것이다.

  봄은 쥰이 윤희에게 쓴 편지를 미리 읽고, 둘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성공한다. 봄에게 윤희와 쥰의 사이는 친구라는 것 자체로 의미를 새긴다. 둘이 사랑하는 사이였든, 친구 사이였든 간에, 봄은 쥰이 윤희에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임을 알았다. 그렇기에 무모하다고도 할 수 있는 둘의 만남을 진행한 것이다. 삼촌의 '왜 인물 사진은 찍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쁜 것'만 찍는다는 신념을 말한 봄이가 유일하게 찍은 인물은 윤희다. 미소를 짓지 않아도, 근사한 옷을 입지 않아도 봄이에게 윤희는 아름답게 보인다. 윤희가 동성애인지 아닌지는 봄이에게 절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봄이에게 윤희는 윤희 자체이자, 사랑하는 어머니로 인식됨을 알 수 있다.

  봄이가 들고 다니는 카메라는 과거 윤희의 어머니가 윤희에게 대학 대신 준 선물이다. 윤희의 오빠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윤희는 대학을 가지 못했고, 이는 당시 만연했던 '아들만 배우면 돼', '아들이 성공해서 부양하면 돼'라는 시대 인식을 고발한다. 윤희는 '남자는 배워서 성공해야하며, 여자는 그 뒷바라지만 하면 된다'는 사상의 피해자인 것이다. 덕분에 윤희는 경력도 기술도 없이 사회에 방치된다. 만약 윤희가 오빠와 대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더라면 어땠을까. 배움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자식인 봄이는 꼭 배울 수 있는 데까지 배우게 하겠다는 생각을 가졌을까? 힘들게 이력서를 손으로 적으며 구직을 위한 고생을 했을까?

  배움에 대한 기회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필자를 포함한 20대 초중반의 많은 이들이 대학생이다. 각자의 뜻이 있어 학비와 청춘을 대학에 바치겠지만,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얻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당장 필자도 뜻하던 바를 얻어가고 있는 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가끔 맞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최소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럴때마다 다시금 나를 기준으로 잡는다. 다른이와의 비교를 통한 성찰도 좋지만, 나의 기준에 부합하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으리란 작은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개개인에 따라 다르고, 이러한 개인 인식의 차이 역시 존중해야한다. 허나, 개인의 의견으로 타인이 피해를 입거나 혐오를 불러일으킨다면 그 의견은 규탄받아 마땅하다. 윤희는 쥰에게 사랑한다는 말이 나온다는 이유로 가족들로 하여금 정신병원에 다니게 된다. 우선, 이에 대한 복선은 삼촌의 사진관에 달린 '주사랑교회 달력'으로부터 시작한다. 독교에서 동성애를 배척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카더라가 아닌 '사실'이다. 허나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된 시절엔 동성애를 정상적인 범주의 사랑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어딘가 틀어지고 엇나간 감정으로 보고 병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현재에 와서야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게 되었으나, 아직까지 동성애는 많은 논란을 야기한다. 나 역시 동성애를 다름없는 감정이라 여기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며, 아직까지도 확실하게 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동성애가 틀어지고 잘못된 것이 아니란 사실만은 명확하게 안다. 쥰이 고양이 주인과의 술자리에서 끝까지 그 사실을 숨기라고, 드러내서 이익될 것 하나 없는 것이기에 무조건 숨기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아직까지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만은 않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윤희와 쥰의 재회는 특별하게 느껴졌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난 후 만난 과거의 연인이 느끼는 감정이 과연 사랑일지, 그리움일지, 친구의 감정일지 생각해봤다. 그리곤 쥰과의 재회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눈시울만 붉히는 윤희의 모습에서 그 감정의 실마리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여전한 사랑이었다.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2387

『윤희에게』

매거진의 이전글 [리뷰] 영화『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보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