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홀인원을 두 번하게 된 사연

by 은수달

"네? 홀인원을 또 했다고요?!"


십여 년 전, 아버지는 친구들과 나간 필드에서 운 좋게 홀인원을 했고, 거창하게 한턱냈다. 그런데 몇 달 전, 지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두 번째 홀인원을 했단다. 프로 선수들도 평생 하기 힘든 걸 살면서 두 번이나 했다니. 기가 막히게 운이 좋은 걸까.


가난한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이십 대 중반부터 축구를 시작했고, 삼십 대 중반부터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당시엔 지금처럼 전문 코칭이나 스크린연습장도 없었으니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단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어릴 적에 학교까지 왕복 10킬로 이상 걸어 다녔고,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수영을 잘했으며,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현장에서 뛰어다녔다. 그런 아버지의 근성을 닮았을까.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따라 지리산 등반을 갔는데, 어쩌다 보니 정상까지 올랐다. 헬스부터 요가, 수영, 배드민턴 등 기회가 닿을 때마다 다양한 운동을 경험했고, 적성에 잘 맞는 필라테스를 십 년 넘게 하고 있다.


타고난 승부욕 또한 체력을 키우는 데 한몫한 것 같다. 학창 시절 체력 테스트에서도 던지기 빼고 나머지 종목에선 평균 이상의 성적을 받았고, 감기에 자주 걸리긴 했어도 큰 병은 없었다.


하지만 술과 담배를 즐기던 아버지는 심장 혈관이 막혀 스탠스 시술을 받았으며, 대상포진에 걸려 실명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 전엔 뇌출혈로 쓰러져 죽을 고비를 넘겼고, 수리한 차량의 엔진에서 불이 나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버지는 새벽에 일어나 축구를 하고 출근하신다. 그리고 현장에선 만 보 가까이 걸어 다니고, 퇴근하면 스크린 골프장에 가서 연습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필드에 나가서 꾸준히 경험을 쌓다 보니 실력은 준프로급이다.


주위에서 나 빼곤 다들 골프를 즐기거나 배우고 있다. 그래서 '버디, 보기, 파' 등 웬만한 골프 용어를 알아듣는다. 하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스포츠라서 한사코 합류하는 걸 거부하고 있다.


어쨌든 아버지가 홀인원(hole in one)을 두 번이나 하게 된 이유는 그동안의 꾸준함과 골프에 대한 열정, 거기에 운이 더해진 것이 아닐까 싶다.



*홀인원: 골프에서 티 샷을 한 공이 단번에 그대로 홀에 들어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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