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우린 '어장'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우린 왜 '물고기'에 비유되며 잡혔는지 아닌지를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 걸까.
스탕달의 에세이 <연애론>에서는 연애를 네 가지 방식으로 구분한다. 첫째, 정열적 연애. 이런 종류의 연애에 빠지는 사람은 자신이 상대방을 왜 좋아하는지 모르거나, 알더라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둘째, 취미적 연애. 이런 연애에 익숙한 남자는 여자를 다루는 데 더 치밀하고 예측 불가능한 일은 가급적 피하며, 연애 중에는 어떤 이유로도 불쾌한 감정을 허용하지 않는다. 셋째, 육체적 연애. 도발적이면서 은밀한 쾌락에 근거를 둔 연애를 말한다. 넷째, 허영적 연애. 일명 전시효과로, 인기 있는 여자를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심리와도 맞닿아 있다.
세기의 바람둥이 카사노바도 매 순간엔 여자들한텐 진심이었다고 고백한다. 단지 한 사람한테만 만족하지 못했을 뿐. 나도 한 때 여자를 '유희' 대상으로만 여기는 한 남자 때문에 마음고생 꽤나 했었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꿈꾸던 연애와는 점점 멀어지고, 남자에 대한 피해의식과 분노만 커져 갔다.
어느 모임에서 자신의 이상형을 '잘 생기고 센스 있는 남자'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여자분을 보면서 속으로 놀랐다. 그러면서 자신은 남자의 외모만 보지, 다른 조건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남자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여자도 남자의 외모를 중요하게 본다. 다만 그 기준이 조금 다를 뿐. 한 때 남자의 겉모습만 보고 사귀다 후회하는 B와 가까이 지낸 적이 있다. B는 유능한 기획자로, 자신감 넘치며 배려심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B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털어놓았다.
"언니, 이번 생에 연애는 틀린 걸까요?"
"왜 그런 얘길 해?"
"지난번에 어떤 분이랑 모임 마치고 술 마시다가 분위기 좋아서 같이 잤거든요."
"그런데?"
"그 뒤로 연락이 뜸하더니 이젠 답장도 없네요."
"정말? 쓰레기네!"
내 입에선 저절로 '쓰레기'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제가 미친 거죠. 감언이설에 속아서 얼떨결에 잤는데, 그렇게 안면몰수할 줄 몰랐거든요."
"여자를 하룻밤 상대로만 여기는 그 자식이 나쁜 놈이지. 이젠 외모에 대한 기대치 좀 낮추고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보는 건 어때?"
"정말 그런 남자가 있을까요?"
"찾아보면 있을 거야."
B를 위로할 겸 그렇게 말했지만, 나도 확신할 순 없었다.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가 지구 상에 존재한다면, 두 발 벗고 환영할 텐데 말이다.
한동안 친하게 지내던 동갑내기들이 있다. 우린 각자 개성 넘치고 소신이 뚜렷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C가 울음을 터트리며 그동안의 일을 털어놓았다.
"나쁜 놈... 처음엔 한 번만 만나 달라고 매달릴 땐 언제고, 막상 사귀고 나니까 바쁘다는 핑계로 요리조리 피하더니... 헤어지자고 하니까 뭐라는 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
"내가 그렇게 만들었대. 나의 집착이 자길 질리게 해서 관계도 망쳤다나?"
"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한 사람의 얘기만 듣고 편 들어줄 순 없어서 자초지종을 알려달라고 했다.
사교성 좋은 훈남의 영어강사 D. 그는 콧대 높고 매력적인 C한테 반해 한 달 내내 쫓아다니며 데이트해달라고 빌었단다. 처음엔 시큰둥했던 C는 그의 끈질긴 고백과 잘생긴 외모에 흔들려 결국 받아줬단다. 그런데 그때부터 갑자기 달라지는 D의 태도에 당황한 C. 그래도 자신이 좀 더 참고 노력하면 그도 언젠간 달라질 거라, 아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 굳게 믿었단다.
"더 기가 막힌 게 뭔 줄 아니? 그 인간이랑 석 달 동안 사귀면서 딱 두 번 만났어."
"뭐? 장거리 커플도 아닌데?"
"말도 마. 하도 연락이 없어서 내가 먼저 전화한 적 있는데, 주위가 시끌벅적하더라고. 그래서 우리 언제 만나는 거냐고 물으니까, 왜 이렇게 질척대느냐고 짜증 내면서 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