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얼룩 6화 첫사랑

by 은수달


그런 밤이면 멀리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듯한 환청에 시달렸다. 그것은 내가 잘 아는 누군가의 목소리 같기도 했지만 명확하지 않았고, 때로는 악몽의 잔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김영하 장편소설, <작별인사>


남자에게 첫사랑은 생에 처음 맛 본 음식과도 같다. 아직 취향이 생기기도 전에 혀끝에 닿은 촉감은 앞으로의 식성을 좌우할 만큼 강렬하다. 내게도 아나스타샤의 존재는 그랬다.




그녀의 세례명은 아나스타샤라고 했다. 친구의 손에 이끌려 가게 된 교회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날 거라곤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성스럽고 엄숙한 장소에서 나의 욕망은 들켜서는 안 될, 추악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망은 많은 것을 뒤덮는다. 기도문도, 찬송가도 내겐 그녀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무엇이 그토록 그녀한테 빠져들게 한 걸까. 단지 누군가를 우상화시켜서 나라는 존재를 바치고 싶었던 걸까.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을 한 단어로 정의 내리긴 힘들었다. 어쩌면 그녀의 온몸에서 풍기는, 지적인 단아함과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가 나의 뇌를 마비시킨 건지도. 그렇다고 그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단죄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저 나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을 탓하는 수밖에. 그럼에도 그녀는 지나치게 아름답고, 한편으론 위험한 짐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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