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고인의 휘파람 8화

by 은수달


며칠 후, 할머니 생신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고향 가는 버스에 오른 후 창밖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결혼 얘기가 나올 텐데 어떻게 모면해야 하나...'


이 땅에서 청년들이 피해 갈 수 없는 세 가지 주제가 있다. 그것은 취업, 연애, 결혼이다. 아무리 삼포, 사포 시대라고는 하지만 어른들은 여전히 그것들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할머니 댁에는 친척들이 모여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노? 회사는 잘 다니고?"

"네, 작은 아버지."

"사귀는 아가씨는?"

"아직... 이요."

"멀쩡하게 생겼는데 왜 없을꼬?"

"그러게요. 은찬이랑 미영인 잘 지내죠?"

어색하게 웃으며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미영인 대학 가고, 은찬인 얼마 전에 입대했다."

"세월 참 빠르네요."

"그러게 말이다. 옛날 같으면 시집, 장가가서 애 낳고 키울 나인데..."

"요즘엔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도 많아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자식 도리는 해야지. 안 그래요, 어무이?"

"맞다. 우리 희찬이도 좋은 아가씨 만나서 장가도 가고 아도 낳아야 할 텐디..."

얘기는 다시 결혼으로 돌아왔다. 난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일 년에 두어 번 참석하는 가족 행사인데도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처럼 소화가 안 되고 마음이 영 불편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거실에선 술판이 벌어졌다. 아버지를 비롯해 친가 쪽은 대체로 술을 잘 마셨다. 난 어머니를 닮아서 한두 잔만 마셔도 금방 취기가 올라왔다.


어머닌 잔칫상 준비하느라 다크서클이 평소보다 더 내려왔다. 장남한테 시집와서 평생 식구들 뒷바라지하며 살아온 어머니의 이마엔 주름살이 제사상의 나물 개수만큼이나 늘어났다. 그걸 보면서 자라온 내 마음속엔 연민과 회피의 감정이 충돌했다. 장손으로서 짊어져야 할 무게가 부모님의 삶에 더해졌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인연을 이어간다는 것이 단지 개인의 취향이나 감정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란 걸 새삼 깨달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보랏빛 얼룩 7화 거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