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봤는데 아무리 아이스박스에 보관한다고 해도 실온에서 고기를 서너 시간 이상 두면 상할 것 같아요. 신선도도 떨어질 테고요. 물놀이 마치고 근처에서 신선식품만 따로 장보는 건 어때요?"
"그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들만 미리 사주실래요?"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둘 다 주관이 뚜렷한 데다 지향점이 달라서 때론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 하지만 감정을 앞세우는 대신 상황을 차분하게 알려주면서 설득 작전에 들어간다.
'주최자 뜻이 완강해서 안 먹힐 것 같은데... 그래도 잘못 먹고 탈 나거나 안전사고 일어나는 것보단 낫잖아. 한 번만 더 얘기해보자.'
결국 물놀이 장소 근처 마트를 검색한 뒤 숙소까지 동선을 알아보았다. 차로 10분 이내 거리라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것 같지 않았다.
오래전, <설득의 심리학>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일이 많았던 내게 꼭 필요한 책이었고,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
평소엔 차분하지만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라 때론 감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심호흡을 하면서 스스로 달랬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나오는 사람한테는 감정을 먼저 헤아려준 뒤 차근차근 상황을 알려주고 납득시키는 게 유리하다. 그래도 우긴다면 원칙을 내세우거나 법률적 지식을 동원하면 효과적이다.
"주말에 제가 그 직원 대신 근무했는데 본인이 했다고 우기네요.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화내고 끊어버렸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몇 년 전, 같이 일하던 점장님이 내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감정적으로 대하면 오히려 일만 커질 테니 우선 근거 자료를 보여주고 사실 위주로 얘기하세요. 그럼 본인도 인정하고 나중에 잘못했다고 할 거예요."
다시 그 직원과 통화하고 온 점장님의 표정이 밝은 걸 보니 일이 잘 해결된 모양이다.
"매니저님 말대로 했더니 본인이 잘못 알고 흥분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한테도 마찬가지다. '어리니까 잘 모를 테니 적당히 얘기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가 후회하는 경우를 여럿 보았다. 요즘 아이들은 예전보다 정보도, 발달도 빨라서 주위 상황을 금방 파악하고 자기 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아이들한테 어른들의 잣대를 들이대며 무조건 따르거나 하지 말라고 강요한다면 입을 꾹 다물게 될지도 모른다.
"나 혼자 이모 옆에 앉을래요."
며칠 전, 저녁을 먹으러 음식점으로 이동하던 중 막내 조카가 이모를 독차지하겠다며 둘째 조카의 의사를 무시했다.
"형도 같이 앉아야지. 이모가 가운데 앉고 너랑 형아가 양쪽에 앉으면 어때?"
"싫어요. 혼자 앉을래요."
"우긴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 이모는 하나니까 공평하게 가운데 앉을게."
계속 고집부리는 조카한테 단호한 어조로 얘기했더니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