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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악몽과 김떡순

by 은수달


"오늘 수도사업소 방문해야 된단다."


비가 후드득 떨어지는 금요일 오전, 사장님한테서 전화가 걸려와 긴장하며 받았다.

"사업자등록증이랑 신분증 가지고 얼른 현장으로 와라."


오늘은 분명히 쉬기로 한 날이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폭우 쏟아지는 휴일 아침에 출근이라니...!!


어쨌든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해 대강 준비하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현재 도로 상황으로 봐선 늦어도 10시 전엔 도착하겠네... 오전 중에 일 처리하고 일찍 퇴근해야겠다.'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특히 주말엔 예상 못한 사건이 숨어 있다가 불쑥 나타나곤 한다.


온라인 쇼핑몰의 택배 사고가 그랬고, 아버지의 대상포진과 외할머니의 병환, 접촉사고 등등.


그래서 금요일이 되면 긴장하곤 했는데, 요즘 들어 긴장을 잠시 놓았더니 어김없이 반복되는 악몽...


하지만 오전의 일은 애교에 불과했다. 점심 먹고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부장님으로부터 보험료 납부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한 번쯤 틀려도 좋으련만.


'어라? 며칠 전에 같은 차량번호로 입금했는데? 부장님이 착각한 건가? 아님 혹시 보험사 실수??'


부장님한테 확인해 보니 보험사 직원한테 요청받은 계좌가 맞단다.

'어떻게 같은 차량번호로 계약이 2건이나 될 수가 있지? 그것도 다른 금액으로?'

두 눈을 의심하며 콜 센터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계약이 이중으로 되어서 둘 중 하나는 취소해야 한단다.


이 사실을 사장님한테 보고하니, 화살이 내게로 날아든다.

"진작에 증권이랑 차량번호 확인했어야지!"

"계약금 입금해야 보험사에서 증권 보내주더라고요. 뭔가 이상하다 싶어 확인해 보니 이중으로 계약되었던데요."

"보험사에서 실수로 계약 날짜 잊어버리면 어떡하려고 그래? 차량이 한두 대도 아니고, 실수로 재계약 못했는데 그 사이 사고 나면 골치 아프다고."

"저도 알아요. 그래서 리스트 정리하려던 참이었어요."


실수는 보험사 쪽에서 했는데 왜 내가 욕을 먹어야 되나 싶어서 억울한 심정을 가득 담아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그걸 해결하는 것도 내 몫, 원망을 듣는 것도 주로 내 몫이다.


만일 내가 별생각 없이 보험사에 입금했더라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평소에 맞춤법이나 숫자에 민감해서 남들보다 먼저 발견하고 정정할 때가 많은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종일 격무(?)에 시달렸던 탓인지 퇴근할 무렵엔 온몸에 기운이 빠지고, 갑자기 김떡순(김밥, 떡볶이, 순대)이 생각났다. 얼른 귀가해서 쉬고 싶은 마음과 김떡순을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이 충돌했고, 결국 후자가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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