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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개념 없는, 세상 민폐

by 은수달


"죄송한데 제가 시간을 잘못 알았네요. 오후 1시쯤 방문해도 될까요?"


오늘 오전 11시경, 현재 거주하는 아파트에 새로운 세입자가 보러 온다고 해서 부동산과 약속을 잡았다. 미리 집안을 정리해두고 시간 맞춰 기다리고 있는데,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보고 역시나 했다. 지난번엔 사전 연락도 없이 현관문 앞에서 비번을 알려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요즘 '민폐'라는 단어를 자주 쓰게 된다. 소설의 주요 소재이기도 하지만, 주위에 민폐 인간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시간 개념이 철저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 보니 나도 자연스레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간 개념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된다.


상가주택을 지으면서 수많은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그중에 정해진 시간에 맞춰 방문하는 담당자가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네? 벌써 왔다고요?"

"미리 작업하고 있을게요."


5세대가 사용할 인터넷과 티브이를 설치하기 위해 당일 오후 3시로 예약한 뒤, 가족들과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2시가 조금 넘었는데, 현장에 도착했다며 연락이 왔다. 다행히 소장님이 있어서 문을 열어주라고 했지만,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급하게 식사를 마무리하고 현장에 갔을 때는 담당자가 작업을 다 끝내고 다른 장소로 이동 중이었다.


그다음엔 침대 배송. 오후에 방문하기로 약속했는데, 전날에 전화가 걸려와 오전에 배송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오전엔 제가 현장에 없어서요. 점심 먹고 들어가면 2시쯤 될 것 같은데요."

"저희가 그날 2시에 배송이 몰려서요. 12시나 1시는 어떠세요?"

"그럼 1시에 최대한 시간 맞춰 볼게요."


결국 업체가 원하는(?) 시간에 따라 나의 일정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고객은 분명히 난데, 왜 업체 쪽 일정에 맞춰줘야 하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물론 정확하게 시간 맞추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지키려는 성의는 보여야지."


거기다 현관문에 붙일 호실 제작을 맡겼는데, 주문이 밀렸다는 핑계로 이주 째 결과물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제작이 늦어지는 것까진 이해하겠는데, 연락이라도 제때 받거나... 사정이 생겨 미뤄질 것 같다거나... 최소한 양해는 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새삼 100명이 넘는 관계자나 인부를 상대해야 하는 소장님의 고충이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물론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거나 납기일이 연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핑계 대신,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과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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