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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16강의 기적, 그리고 숨은 땀방울

by 은수달


"준비되지 않으면 운도 소용없죠."


유영철 관련 다큐에서 담당 형사가 어떻게 그를 검거하게 되었는지 묻자, 위처럼 대답했다.


이번 월드컵 경기를 지켜보면서 준비된 자에게 운도 따른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고, 남동생의 경기를 보려고 전국을 돌아다녔던 시절이 떠올랐다.




2002년 월드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4강 진출이 확정되면서 전 국민이 들썩이던, 역사적인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물론 감독의 탁월한 안목과 카리스마도 한몫했지만, 선수들 개개인의 숨은 땀방울이 없었다면 월드컵 신화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포르투갈전에서 이겨야 할 뿐 아니라, 가나와 우루과이의 결과도 16강 진출에 영향을 준다는 얘기에 사실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반전에서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니 적어도 1골은 넣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후반전에 왠지 한 골 넣어서 이길 것 같은데요?"

무승부로 전반전이 끝나자 같이 보던 애삼의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막연한 기대가 아닌, 경기 내용을 바탕으로.


그 사이 경기 규정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축구선수를 가족으로 두다 보니 웬만한 용어는 알고 있으며 대강 흐름도 눈에 보인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수로 활동했던 남동생은 취미도 축구 게임일 정도로 못 말리는 축구, 혹은 운동 애호가이다.


"국내에서 프로 축구선수로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남동생의 전 직업을 알게 된 애삼이 물었다.

"글쎄요. 1프로?"

"비슷해요. 0.8프로래요."


여기서 성공의 기준은 프로팀에 입단해서 꾸준히 경기에 출전할 뿐만 아니라, 1군으로 뛴 경험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남동생은, 확실히 성공한 축구선수의 반열에 속한다. 하지만 그 뒤에 숨은, 엄청난 노력을 안다면 혀를 내두를지도 모른다.


아버지 따라 조기축구회에 다니면서 축구의 재미에 눈을 뜬 동생. 초등학교 때까진 그저 취미로 할 줄 알았는데,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선수가 되고 싶단다.

"음... 그냥 취미로 하면 안 될까? 위험하기도 하고, 돈도 많이 들고... 그렇다고 남다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부모님은 적극적으로 말렸지만, 난 동생의 꿈을 응원했다.


하다가 정 힘들면 스스로 그만둔다는 얘기가 나올 것이고, 공부 쪽에도 재능이 없어 보이니 기왕이면 본인이 원하는 걸 시키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부모님의 우려와는 달리 동생은 중학교에서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냈으며, 순발력은 조금 떨어져도 체력과 끈기가 탑재되어 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축구 명문으로 유명한, 동북고로 유학 보냈다. 어릴 적부터 합숙 생활을 해서 그런지 또래보다 성숙했고, 운동하느라 못 따라잡은 공부는 내가 주말마다 짬 내서 도와주었다.


그렇게 무사히 졸업하고 대학에 갔으며, 운 좋게 실력 좋은 감독을 만났다. 전국 체전에서 우승을 놓쳐본 적이 거의 없다는, 전설의 감독님. 하지만 실제로 봤을 땐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인상이었다.


"축구는 발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운동이야. 운동한답시고 공부 게을리하면 혼날 줄 알아. 그리고 진짜 승부는 전지훈련에서 결정되는 거야."


무작정 선수들을 야단치고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리더십으로 각 선수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모습이 꼭 히딩크를 닮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선수들도 대부분 군말 없이 따랐고,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중에 한 명도 미드필더로 뛰었던 남동생이었다. 그러나... 프로에서 뛰다가 무릎인대를 다치는 바람에 큰 수술을 받았고, 일 년 넘게 재활 훈련을 받았지만... 원 상태로 회복되지 못했다.


'손흥민이 왜 바로 안 넣고 멈추는 거지?'

의문을 가진 순간, 골대 앞에 있던 황희찬이 눈에 들어왔고, 골로 이어질 거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남다른 역량으로 활동 중인 손흥민. 부상의 어려움을 딛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다른 선수들 역시 각자 맡은 자리에서 땀방울 흘려가며 승리를 향해 달렸다. 물론 경기 내용이 아쉽거나 마음에 안 찰 수는 있다. 하지만 두 시간 넘게 필드를 쉼 없이 달려본다면, 축구라는 스포츠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16강 진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결승골 넣은 황희찬&인터뷰 중인 조규성



프로축구로 성공할 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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