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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종지 엄마와 양푼이 딸, 불꽃축제

by 은수달


"6시쯤 불꽃축제 보러 가자."

"네?!"


혼잡하고 추우니 근처에서 저녁이나 먹자던 엄마는 갑자기 계획을 바꾸더니 외출 준비를 재촉한다.


"지금 가면 리허설 중이고 날도 많이 추울 텐데요."

"옷 두껍게 입고 일단 가보자."

내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는 간장종지다. 할 수 없이 옷을 껴입고 조카들의 외출 준비를 도와준다.

'하필 오늘 얇은 바지에 코트를 입고 왔는데... 전에도 몇 번 봤는데 굳이 왜...'

불꽃축제에 간다고 미리 말해줬으면 어떻게든 대비했을 것이다. 야속하지만 할 말을 속으로 삼킨다. 담요를 챙기면서.


6시 30분경 현장 도착. 경찰들이 방파제 주위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입구부터 경찰버스가 도로를 막아서 차량 출입을 제한하고, 간이화장실도 설치되어 있다.

'이태원 참사 덕분인가... 과할 정도로 대비했네.'

유아부터 학생, 어르신, 반려견까지 하나둘 몰려들었고 7시쯤 되자 드디어 축제가 시작되었다.


사람들 틈에 끼여 겨우 건진 사진. 여의도 불꽃축제를 처음 본 기억이 떠올랐다. 삼십 분쯤 지나자 슬슬 배도 고프고 발이 시렸지만, 가족들은 이동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다행히 아버지랑 먼저 음식점에 가 있으라는 분부가 떨어진다. 막냇조카도 데려가려니 더 있겠단다.

'불꽃축제 처음 보는 제주도 촌놈이지.'

고향이 제주도인 조카는 부산 와서 처음 경험해보는 것들이 많다.


그렇게 8시쯤 되어서야 다 같이 모여 식사 시작. 음식점에서도 불꽃이 잘 보여 살짝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일 마치고 뒤늦게 합류한 제부. 백년손님 사위를 기다리느라 엄마의 목이 빠지기 직전이다. 하필 축제 때문에 도로가 통제되어 공항에서 지하철 타고 온단다.

"지금 수영역이니 동백까지 네 정거장 남았네요."


제부가 등장하자 엄마가 먼저 달려 나가고, 막냇조카가 와락 안긴다.

"어제 봤으면서 그렇게 반갑니?"

"온다고 고생했어요. 얼른 먹어요."

나보다 한 살 위인 제부는 가족이랑 일밖에 모르는 남자다. 꼼꼼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며 사람들과 적당히 거리 두며 지낸다.


방학을 맞이한 제주도 조카들, 사위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간장종지 엄마, 세상 잘나고 강한 여동생, 아내 말을 제법 잘 듣는 제부, 고기 잘 굽는 아버지, 그리고 그들을 챙기느라 열 일하는 나.


못 말리고 개성 넘치는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다.



p.s. 위 동영상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니 상업적 이용이나 전제 삼가주시고, 인용 시 출처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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