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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에세이스트
간장종지 엄마와 양푼이 딸 #6
by
은수달
Jan 18. 2023
이사 준비보다 두려운 건
이사 당일 엄마의 잔소리와 간섭이었다.
"이건 웬만하면 좀 버리자. 위에 뭐 좀 올리지 말고."
조카에겐 신기하고 재밌는 공간이 엄마 눈엔 산만하고 지저분하게 보였나 보다.
"웬만한 건 다 버렸어요. 근데 이건 팬트리에 넣고 쓰면 좋을 것 같아요."
"옷장은 오래되었는데 꼭 가져가야겠니?"
십 년째 별 탈 없이 잘 쓰고 있는 옷장도 버리자는 제안에 이불이 넉넉하게 들어가서 편하다며 고집을 부렸다. 때문에 사다리차를 불러야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사하고 나서도 엄마의 간섭은 이어졌다
.
"빨래 건조대는 거실에 두지 말고 베란다에 둬야지."
"저건 보기 싫은데... 좀 치우면 안 되겠니?"
엄마한테 인테리어의 기준은 바로 깔끔함 그 자체. 특히 흰색에 대한 강박증이 있다.
"비누
받침대는 마음에 드네."
며칠 전, 다이*에서 몇 천 원 주고 구입한 아이템이다. 엄마의 잔소리를 고려해 일부러 흰색으로 골랐다.
내 집인데 내 집이 아닌 듯 내 집 같다.
"오늘 저녁에 약속 있어서 자고 가야겠다."
"약속이 몇 신데요?"
"음... 일단 연락해 봐야지."
뜸을 들이는 건 보니 약속이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 잠시 후, 친구랑 통화하더니 안 나가도 된단다. 덕분에 떡국 2인분을 끓이게 되었다.
"양이 좀 많지 않나?"
"많으면 남기셔도 돼요."
떡국이 많다고 투덜대던 간장종지는 국물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아, 잘 먹었다. 국물 맛있네. 뭘로 육수 낸 거니?"
"
다시마랑 북어포, 그리고 표고버섯 넣고 끓이다가 국간장 조금 넣었어요."
간장종지 본인은 요리를 잘한다고 굳게 믿지만, 사실 백종원 레시피를 따라 한 요리가 몇 배는 더 맛있었다. 그래서 입맛이 까다로운데도 남의 집에 가선 대체로 밥을 잘 먹는다.
"밥 먹었으니까 운동이나 할까?"
오 분 거리도 차를 타고 움직일 정도로 걷기를 싫어하던 간장종지는 양푼이가 운동의 필요성을 누누이 강조한 덕분인지 먹고 움직이는
습관이 생겼다.
"오늘 오천 보 정도 걸었으니까 삼십 분만 더 걸으면 되겠다."
그렇게 얼떨결에 모녀는 동네 한 바퀴를 걸으며 어떤 건물이 예쁜지, 주위에 어떤 매장이 운영되고 있는지 시장조사(?)를 하게 되었다.
"나중에 전철만 들어오면 여기도 살만 할 거다."
"그러게요. 얼른 들어왔으면 좋겠네요."
"집이랑 주차장이 조금만 더 가까우면 좋을 텐데..."
"그래도 주차장 있어서 좋네요."
성격도 취향도 사뭇 다르지만, 한 공간 안에서는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려 노력하는, 못 말리는 모녀는 오늘도 투닥거리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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