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과 슬픔의 금쪽이

by 은수달


"잘 먹는 것과 다 먹는 것은 다르잖아!"


어제 <금쪽같은 내 새끼 시즌4>를 보면서 오랜만에 펑펑 울었다. 하필 사연에 나온 금쪽이들이 엄마 때문에 상처받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첫째였기 때문이었을까.


초등학생인데 몸무게가 20kg도 채 나가지 않는 1번 금쪽이는 거식증 때문에 늘 밥과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거기다 동생을 먹이는 데서 삶의 보람이나 이유를 찾는 애착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금쪽이가 유치원에서 동생이 밥을 제대로 먹을지 걱정하자 엄마는 곧바로 전화를 걸어 사실을 확인해 준다. 하지만 잘 먹는 것과 다 먹는 것은 다르다며, 선생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1번 금쪽이는 왜 이렇게 식사를 거부하게 된 걸까. 왜 동생의 식사에 집착하는 걸까.


자기 통제에 대한 욕망이 강하고 기준도 뚜렷한 1번 금쪽이에게 예상 밖의 존재인 동생은 스트레스의 주원인이자 엄마의 사랑을 빼앗아가는 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에 대한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금쪽이는 식사를 거부함으로써 부모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었고, 그것이 지속되다 보니 거식증이라는 극단적인 증상으로 드러난 것이란다.


"지나친 허용이 아이의 증상을 악화시킨 것 같아요. 때론 아이를 위해 단호한 태도를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자기 주관이 뚜렷한 막내조카 때문에 한동안 애를 먹은 적 있다. 양말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외투에 얼룩이 묻거나 원하는 장난감이 없으면 외출을 거부하는 조카.

"엄마가 가져온 양말이 이것밖에 없어. 마음에 드는 게 없어도 하나는 골라 신어야 해."

"싫어!"

"그럼 양말 안 신고 신발만 신을까?"

"싫어!"

"그럼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 혼자 있을래?"


무조건 싫다며 고집부리는 조카를 혼자 두고 나가는 척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주섬주섬 신발을 신는다. 매번 이런 전쟁을 치러야 하는 부모라면 아이가 원망스럽거나 쓸데없이 눈치를 살피게 될 것이다.


결국 입원치료라는 처방이 내려진 1번 금쪽이를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과 함께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나도 한 때는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식이장애에 걸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 대부분 첫째들에겐 억울함과 슬픔이 내재하고 있다. 동생이라는 존재를 원한 적이 없는데, 어느 날 엄마 곁에서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할 뿐만 아니라 동생을 돌보라는 임무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동생이 미우면서도 엄마의 인정이나 관심을 받으려면 돌보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육아의 일부를 자연스레 떠넘기며 엄마는 몸과 마음이 한결 편해지지만, 1번 금쪽이들은 투정 부릴 사이도 없이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는 돌봄 노동을 몸에 익혀야만 한다.


나도 학창 시절엔 동생들을 열심히 돌보고 학교에선 모범생 역할을 자처하며 엄마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의 요구는 계속 이어졌고, 기대를 채우지 못하면 비난과 원망이 돌아왔다.


'도대체 언제까지,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 거지? 왜 난 항상 동생들한테 뭔가를 양보하거나 엄마 아빠를 이해해야만 하는 거지?'


이해받지 못한다는 슬픔과 원치 않는 역할로 인한 억울함은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뜻하지 않은 순간에 분노나 냉소로 표출된다.


누구보다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강한 1번 금쪽이들. 엄마 곁을 지키며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한편으론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도 강하게 느낀다.


'첫째로 태어나고 싶었던 적 없어요. 어쩌다 그렇게 된 건데, 왜 나한테만 이러시는 거예요?'


어쩌면 1번 금쪽이들은 부모한테 이렇게 항의하고 싶지만,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에 꾹꾹 눌러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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