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병원에 예약해서 엄마랑 동행하게 되었다. 원래 각자 자가용을 가지고 갈 생각이었으나 기름값도 아낄 겸 엄마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중간에 길을 알려주느라, 묻는 말에 대답하느라 딸은 쉴 겨를이 별로 없었다.
3시경, 병원 주차장 입구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주차하는 데만 십분 넘게 걸리고, 접수하고 나서도 다시 이십여 분 대기. 진료 다 받고 나니 4시가 다 되어갔다.
"생각보다 혹이 많은데요? 거기다 표면이 울퉁불퉁한 애들이 많아서 조직검사 해봐야 할 것 같아요."
크기와 상관없이 표면이 매끈하고 달걀형이면 단순한 물혹이라 지켜보면 되는데, 사이즈가 작아도 모양에 따라 위험등급이 달라진단다.
"백화점은 반대 방향이에요."
"아닌데? 네비가 왜 안 알려주지?"
예전에 자주 다니던 길이라 대강 방향을 기억하고 있었고, 백화점으로 향하는 길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면세점 마칠 시간 다 되어가니까 야외에 주차하고 걸어가자."
걷기를 싫어하는 엄마가 어쩐 일로 주차가 편한 곳을 택했다. 오랜만에 오는 면세점이라 마음이 급했던 걸까.
조만간 떠날 해외여행에 대비해 엄마는 선글라스를 신중하게 골랐다. 코로나 때문인지 문 닫은 매장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늦은 시간이라 우린 여유롭게 쇼핑할 수 있었다.
"며느님이세요?"
이번엔 바지를 사기 위해 엄마한테 어울릴만한 브랜드를 골랐다.
"아뇨. 딸인데요. 안 닮았죠?"
"그게 아니라 너무 조용하셔서..."
언젠가부터 엄마랑 동행하면 '며느리'로 오해받기 시작했다. 엄마보단 아버지를 많이 닮았고, 여장부 같은 엄마를 어릴 적부터 무서워한 탓도 있다. 거기다 말수가 적고 엄마를 비서처럼 수행할 때가 많다 보니 남들 눈엔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구나. 뒤늦게 이해하게 되었다.
"며느리랑 오시지 그랬어요?"
"며느리는 이렇게 안 따라다니죠."
가끔 다 같이 쇼핑할 때도 있지만, 만만하게(?) 데리고 다니려고 날 불러내는 것이 아닐까.
쇼핑을 마치자 7시가 훌쩍 넘었고, 배꼽시계도 사정없이 울려댔다.
"오랜만에 딤섬이나 먹을까?"
웨이팅 맛집이라 엄두도 못 냈던 음식점을, 마감 시간을 앞두고 운 좋게 입장했다. 그리고 오리고기 덮밥과 딤섬 두 종류를 골라 허겁지겁 먹었다.
"시간 남는데 커피나 한 잔 할까?"
"비싼 옷도 사주고, 애인보다 엄마가 낫지?"
본인 옷만 사는 게 미안했는지 엄마는 딸한테도 옷 한 벌을 기분 좋게 사준다. 그리고 생색낸다. 하지만 그 생색이 오늘따라 기분 나쁘지 않다. 어쩌면 엄마는 남들처럼 딸이랑 같이 오붓하게 데이트하는 시간이 그리웠던 게 아닐까. 그래서 큰딸한테 연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배신감과 서운함을 크게 느낀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