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병원에서 조직검사 결과를 듣기로 한 날이다. 점심 먹고 서둘러 출발하니 예약 5분 전에 도착했다. 보호자인 엄마는 이미 와 있었다.
원래 간장종지는 시간 개념 없고 약속 시간에 늦기로 유명했다. 아무리 주위 사람들 마음이 넓다 해도 매번 늦는 걸 달가워할 리 없었다.
"여긴 항상 막히는 데다 신호도 많아서 여유 있게 나오자고 했잖아요."
하루는 엄마를 시내까지 태워주기로 했는데, 늦장 부리다 약속시간에 늦을 뻔한 적 있다. 하지만 본인 잘못은 잊어버리고 운전자인 나와 애꿎은 도로만 탓했다.그 후, 중요한 일정이 생기면 전날이나 반나절 전에 알려주고, 출발 시간도 미리 정했다. 덕분에 지금은 약속 시간을 그런대로 잘 지키는 간장종지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친해진 동네주민 모임이 있었다. 멤버들은 한 달에 한두 번 모여 밥을 먹거나 가볍게 술도 마셨다. 하지만 그들 중에 복병이 있었으니... 항상 십분, 이십 분씩 지각했다. 시간 맞추거나 일찍 나온 친구들은 매번 그 친구를 기다려야만 했고, 부당함을 느낀 한 명이 솔깃한 제안 했다.
"그 친구한테만 시간을 조금 이르게 알려주는 건 어때? 그럼 적어도 늦진 않을 것 같은데..."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오래전에 사귀던 연인도 대체로 늦는 성향이라 타이머를 맞추거나 시계를 오 분 정도 일찍 맞춰둘 것을 권했다. 이후 지각하는 경우가 줄었고, 덕분에 그를 기다리느라 스트레스받는 상황도 차츰 사라졌다.
나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 접촉사고가 나서 수습하느라 장소에 나타나지 못한 지인이 있다. 하지만 그는 사정을 얘기하며 양해를 구했고,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예기치 않게 일이 생기거나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과 기다리게 만드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사소한 지각들이 모여 결국엔 큰 사건을 일으키거나 신뢰에 금이 가게 만들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