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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한 번 같이 가기 왜 이렇게 힘들지?

by 은수달


"담달 초에 다 같이 괌에 갈래?"

"네?!"


5월 중순, 엄마한테 연락이 와서는 갑자기 해외여행을 가잔다. 원래 7월 말쯤 휴가차 해외로 가기로 했는데, 비행기표가 없어서 일정을 앞당기기로 했단다.


"그때 친구들이랑 여행 가기로 했는데요."

"6월 셋째나 넷째 주는?"

"셋째 주엔 수업 있고, 넷째 주는 살짝 애매한데요."


코로나 때문에 몇 년이나 가족여행을 미룬 엄마 입장에선 바쁘다고 튕기는(?) 내가 야속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도 아닌 해외여행을 2주 전에 결정해서 통보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두 발 양보해서 6월 말에 어렵게 일정을 맞춘 뒤 비행기 티켓부터 급하게 예약했다.

'이번에도 꼼짝없이 비서 노릇 하겠네. 엄마 소원이라고 하니 눈 딱 감고 다녀오자.'



여행을 앞두고 몇 년 전 일본 가족여행이 떠올랐다. 둘째 조카가 태어나기 석 달 전, 올케를 포함해 가족 8명이 패키지여행을 떠났고, 빡빡한 일정 쫓아가느라, 식구들 챙기느라 정신없었다.


"여기에서 쉬고 있어요. 근처 잠시만 둘러보고 올게요."

아기자기한 개인 카페가 많은 동네라 가족들을 스타벅스에 데려다 놓고, 딱 삼십 분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 뒤로 가족여행이라면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게 되었다.


며칠 후, 괌으로 떠난 관광객들이 태풍 때문에 발목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걱정이 앞섰지만, 우린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괌에 있는 공항들 당분간 폐쇄래요. 비행기 표는 지금 취소하면 전액환불 가능하대요."

항공사에서 일하는 올케 덕분에 우린 재빨리 표를 취소하고, 다른 여행지를 알아보았다.


"나트랑은 어때요?"

"담주에 지인들이랑 가기로 했다."

"그럼 일본은요?"

"다들 몇 번씩 가본 데다 패키지도 비싸더라."

"그래도 가족끼리 잠시 다녀오긴 괜찮을 것 같은데... 말도 통하고요."

안 그래도 일본에 가고 싶었던 내가 조심스레 제안했다.


"아님 세부는 어때요? 거기 리조트도 괜찮고 휴양지라 좋대요."

"그럼 비행기부터 알아보고 예약하자."

하지만 신이 날 도왔는지, 아님 가족여행을 질투했는지 하루 사이에 좌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는 건 있는데 오는 건 좌석이 3개밖에 없다네. 날짜를 바꾸면 비용 추가가 많이 되고..."


여행사에서 단체로 예약하면 저렴하지만, 일정이 달라지면 개인으로 예약하는 거라 비용도 추가된다고 했다.


"안 되겠다. 해외는 담에 가야겠다."

가족과의 단합이나 여행에 목말라 있던 엄마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물론 가족끼리 오붓하게 여행 다니면서 추억을 만드는 것까진 좋다. 하지만 억지로 일정을 맞추거나 누군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와 우유부단한 엄마와 남동생의 성격이 6월 말 내게 자유시간을 허락해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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