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에세이랑 소설 사이
삼가 고인의 휘파람 2화
by
은수달
Mar 20. 2022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마자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시계를 보니 8시가 다 되어간다. 옷장을 뒤져 검은 양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여름의 장례식은 고인에게도, 조문객에게도 달갑지 않다. 특히 나 같은 단벌 신사에겐 더더욱.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상주와 맞절한 뒤, 동기들과 모여 앉았다.
"동수 말이야. 학교 다닐 때부터 오래 살 거라더니 이렇게 허무하게 갈 줄이야..."
"그러게. 대낮에 운전하다가 갑자기 트럭이 끼어들었대. 피할 틈도 없이 그대로...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남의 일인 알았는데..."
동기들과 술잔을 주고받다가 문득 동수가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희들 기억나? 동수 대학 들어갔을 때 다 같이 모여서 술 마신 적 있잖아. 그때, 저 죽으면 괜히 무게 잡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 불러달라고 했잖아."
"그랬나?"
"그 녀석이 좋아하는 노래가 뭐였지?"
"비 오는 거리였지 아마? 맨날 콧노래 흥얼거린 기억은 나는데..."
"아마 맞을 거야. 여자 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몇 날 며칠 그 노래만 불렀다고 했었어."
"장가도 못 가 본 억울한 녀석... 흑흑..."
소주를 들이켜던 한 녀석이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동수가 보면 한마디 하겠다. 울긴 왜 울어, 하면서..."
"그럼 우리 동수 소원대로 노래나 불러볼까?"
"여기서?"
다른 친구가 어깨를 들썩이며 '뭐가 어때서?'라는 표정을 지었다.
"비 오는 거릴 걸었어 너와 걷던 그 길을 눈에 어리는 지난 얘기는 추억일까~"
"아, 이 노래는 기타 치면서 불러야 하는데... 동수 녀석 맨날 기타 붙잡고 놀던 거 기억나?"
"맞다. 우리 보고도 같이 밴드 하자고 졸랐잖아. 덕분에 난 베이스 기타 질러서 몇 달 고생했고."
"그 녀석 좀 산만하고 엉뚱하긴 해도 근본은 착한 놈이었는데..."
"앞으로 이렇게 종종 생각나겠지?"
"모르지. 며칠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릴지도..."
"하기야 가족끼리도 얼굴 보기 힘든 세상인데..."
"우리끼리라도 자주 좀 보자. 바쁘다고 튕기지 말고."
"그래"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술잔을 들어 건배했다.
"억울하게 저 세상으로 간 동수를 위해. 그리고 남은 날들을 악착같이 살아낼 우리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무시한 채 우린 어느새 흥에 겨워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그리고 동수도 곁에서 박자를 맞춰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keyword
장례식
죽음
소설
10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멤버쉽
은수달
소속
바이아지트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혼족 일상 훔쳐보기> 출간작가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엔잡러| 글쓰기강사|바이아지트 대표
구독자
304
팔로우
월간 멤버십 가입
월간 멤버십 가입
매거진의 이전글
삼가 고인의 휘파람 1화
삼가 고인의 휘파람 3화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