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사우나에 들른 난 가볍게 샤워한 뒤 탕에 들어갔다. 저마다 다른 몸을 가진 사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눈을 감은 채 휘파람 부는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주위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어르신이 한 마디 했다.
"거, 조용히 좀 합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휘파람도 마음대로 못 부릅니까?"
당당한 사내의 말투에 어르신은 멈칫하더니 나지막하게 대꾸했다.
"시끄러워서 목욕하는 데 방해되지 않겠소?"
"그럼 조용히 부르죠. 나중에 등이나 밀어드릴까요?"
큰 싸움으로 번질까 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다행히 사건은 부드럽게 종결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남자가 몸을 목까지 담그더니 이내 머리도 입수했다.
'괜찮겠지? 잠수 테스트라도 하려는 건가?'
사선은 먼 곳을 향해 있었지만, 어느새 그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는 이십 초가 넘도록 기척이 없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대답이 없다. 일 초, 이 초, 삼 초. 그 짧은 시간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직장에서 잘리거나 사업이 망해서 독한 마음을 먹은 건 아니겠지? 요즘엔 엉뚱한 곳에서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다던데...'
그렇게 십 초쯤 흘렀을까. 수중 위로 얼굴을 드러낸 그는 숨을 몇 번 내뱉더니 벌떡 일어나 탕을 나가버렸다.
목욕을 마치고 나와 근처 분식집에서 김밥과 만둣국을 주문했다. 나처럼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서 그리 어색하진 않았다. 카페에 들어가 새로 올라온 글이 있는지 확인했다. 맛집 방문 사진, 카페 사진, 드립 커피 동영상 등 다양한 글들이 있었다. 가끔 알람 음이 신경 쓰일 때도 있지만,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엔 제격이다.
'이렇게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는 게 얼마 만인지... 그동안 야근에 회식까지 정신없이 보냈었는데...'
새삼 일상이 다른 채도로 다가왔다. 직장과 집만 주로 오가는 나 같은 뚜벅이에게 드라이브나 해외여행은 머나먼 얘기일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도 내겐 소소한 즐거움이자 찰나의 여행이다.
동수의 장례식 이후 우린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녀석의 죽음은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매일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도 죽음의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데,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불치병 환자나 어르신들은 하루하루를 어떤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난 정말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아니,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 가끔 장례식장에 가면 영정 사진을 한참 동안 쳐다볼 때가 있다. 죽음을 예감하고 미리 찍어둔 사진도 있고, 급작스레 찾아와 젊은 시절의 사진으로 대체한 것도 있다. 누군가에게 마지막으로 기억될 사진이라면 특별한 추억이 있는 사진이 낫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사진을 찍은 것도, 누군가에게 찍혀본 것도 참 오랜 전 일이다. 이 기회에 영정사진이나 미리 찍어둘까.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안다면 노발대발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