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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독일상 훔쳐보기 27화

27. 파견자들

by 은수달


나는 너의 일부가 될 거야. 어떤 기억은 뇌가 아니라 몸에 새겨질 거야. 너는 나를 기억하는 대신 감각할 거야.


사랑해. 그리고 이제 모든 걸 함께 잊어버리자.


-김초엽, <파견자들>



그날 이후, 그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녀와 충동적으로 입맞춤을 했지만, 그의 몸은 계속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 근무를 하는 도중에도, 길을 걷다가도 그녀의 입술과 얼굴과 부드러운 머릿결이 떠올랐다.

'보고 싶다. 그런데 파견 근무라니...'


이제 막 그녀와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무렵, 그는 타지로 파견을 가게 된 것이다.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니 그녀한테 소식을 전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이번 주말에 시간 돼?]

[나 지금... 경주로 파견 왔어 ㅠ 한 달 정도 있을 것 같아 ㅠㅠ]

[앗 그렇구나 ㅠㅠ]


그녀 역시 그와의 연락이 뜸해지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그의 진심을 알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파견이라니...


[몸조심하고~]

[고마워! 누나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역시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백하면서도 여지를 주는 메시지를 그녀는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몇 년 만에 이어진 그들의 인연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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