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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Dec 28. 2023

떠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작가의 여행에 치밀한 계획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너무 순조로우면 나중에 쓸 게 없기 때문이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누군가에게 외출이나 여행, 이사는 평생 몇 번 안 되는 이벤트에 불과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일상처럼 반복되는 풍경 중 하나일 것이다.


굳이 선택하라면 후자에 가깝다. 지금까지 이사만 열 번 넘게 하고, 여행은 틈틈이, 외출은 거의 매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쉬는 날엔 잠깐이라도 외출을 해야 하는 성격이지만, 코로나 시절을 잘 견딘 걸 보면 내향적인 성향도 공존하는 것 같다.


내게 집을 떠난다는 건 비일상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것이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공기와 주위 풍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끔 귀찮음과 피로가 동반되기도 하지만.


해외여행을 너무 가고 싶은데 돈도 시간도 여의치 않아서 어느 날 밤, 친구랑 무작정 공항으로 떠난 적이 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조용해서 당황했다. 거기다 주차장 입구를 착각해서 빠져나가느라 헤맨 기억도 생생하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갈 땐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고, 호주에 어학연수 갔을 때도 김치보단 떡볶이가 더 먹고 싶었지만,  막상 고향에 다시 내려오니 내가 머물렀던 곳들이 그리워진다.


익명성에 나를 감추고 타자성을 마주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헤매다 어느 주유소 직원의 도움으로 목적지를 찾을 수 있었고, 처음 보는 이에게 길을 친절히 알려주게 되었고, 호텔 침대의 아늑함에 마음 놓고 몸을 맡길 수 있었다.


적당한 긴장감이나 백색 소음이 있어야 글이 더 잘 써지는 걸 보면 난 타고난 글쟁이 혹은 떠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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