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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Jan 11. 2024

상사가 커피 타주는 회사


"정 대리, 커피 한 잔 할래?"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옆에서 차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제가 타 드릴게요."

"아니, 내가 맛있게 타줄게."


정 대리는 입사한 지 석 달 째인 신입사원이다. 차장님보다 한참 후배이지만, 눈치가 빠르고 성격이 싹싹한 편이다.


"제가 할게요."

싱크대 가득 그릇이 쌓여 있어서 설거지를 하려는데, 어느새 달려온 정 대리가 나선다.

"괜찮아요. 금방 끝나요."


우리 회사 역시 서열이 있지만, 경계가 느슨한 편이라 가끔 장난으로 반말을 하거나 농담을 주고받는다.


"부장님아!"

3년 차 외국인 근로자는 호칭이 여전히 헷갈리는지, 부장님과 사장님한테 저런 식으로 부르고, 할 말도 당당하게 한다. 현장을 책임지는 그들이 다치면 병원에 데려가주고, 비자업무도 대신해 주거나 돕는다.


우리가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상사는 바로 사장님!!


사장님이 사무실에 들어서면 공기부터 달라진다. 그리고 어김없이 부장님을 찾는다. 하지만 보일 만하면 어느새 사라지는 부장님의 행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잠시 현장에 간 것 같은데요."

"아까 납품 간다고 들었는데요."

우린 일심동체가 되어서 부장님을 커버해 준다. 덕분에 부장님이 실수해도 책임이 나한테 돌아올 때가 많다.


"퇴사한 직원이 있는 것도 확인 안 하고... 아직까지 변경 신청을 안 했다고?"

"저도 넘겨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몰랐어요. 지금 절차 알아보는 중이에요."

억울한 마음에 항변 아닌 항변을 하고 말았다.


커피를 타주는 일뿐만 아니라 틈틈이 간식이나 음료를 챙겨주는 일, 휴게실에서 다 같이 식사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 여름이면 더위 먹지 않도록 얼음이나 아이스크림, 수박 등을 열심히 사 오는 일 모두 상사인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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