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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May 05. 2024

조카님 보좌하는 어른이


"이모, 내일 어린이날인 거 알지?"

"이모 돈 별로 없는 것도 알지?"


오늘 오후, 제주도에서 온 막내조카를 데리고 레고를 사주기 위해 백화점으로 향했다. 정확히 말해 계산은 어머니가 하고 난 골라주는 걸 도와주기만 했을 뿐이다. 내게도 선물을 기대했는지 내일이 '어린이날'임을 강조했다.


어머니가 옷을 고를 동안 난 막둥이를 데리고 9층 놀이동산으로 향했다. 마침 회전목마를 운영하고 있어서 기다렸다 조카를 태워주었다.


"이모는 저기서 사진 찍어줘."


이젠 제법 의젓해진 여섯 살 조카님은 이모를 사진작가로 지목해 주었다. 조카님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손을 흔들어주거나 해맑게 웃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모, 나 목말라."

"그럼 카페 가서 주스 사줄게."

"이모, 나 레고 만들래."

"큰 거는 잃어버릴 수 있으니 작은 것만 만들자."

"이모, 나 발 아파."


하루에도 수십 번 '이모'를 불러대며 자기가 원하는 걸 당당히 요구하는 조카님을 보좌하느라, 운전하느라 분주했다.


두 번째 미션은 물놀이를 마친 큰 조카와 친구들을 모시러 가는 것. 차가 많이 막혀서 같은 동네인데 삼십 분 남짓 걸렸다. 어느 건물 앞에서 공주님 세 명을 픽업한 뒤 근처 음식점으로 향했고, 차 안은 수다쟁이들 덕분에 배경음악이 필요 없었다.


주말이라 삼십 분 정도 대기한 뒤 식사를 할 수 있었고, 다들 배고팠는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오늘은 행운의 날이야. 너무 맛있어서 죽을 것 같아."

음식이 입맛에 맞았는지 막내 조카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렇게 늦은 저녁을 먹고 본가에 와서 쉬고 있는데, 이번엔 여동생과 제부, 그리고 일행이 온단다. 집안을 청소하고 다과를 준비하느라 갑자기 분주해진 간장종지 엄마와 양푼이 딸. 다행히 차는 적당히 잘 우려냈고, 손님들은 편안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일과를 마무리하고 귀가하니 어느덧 자정. 종일 돌아다니느라 조카님들 보좌하느라 피곤하지만, 이모 노릇을 제대로 했으니 선물은 생략해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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