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한번 잠을 자기 시작하면 눈이 떠지질 않는다. 아기 둘의 밤중 수유를 어떻게 했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당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한 일주일만 하면 애들이 훅 커서 “엄마. 그동안 힘들었지? 이젠 스스로 밥 먹고 화장실도 갈게." 하는 희망이라도 있다면 일주일만 참으면 돼 하고 견딜만할 텐데. 이건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잖아.
베이비 시터를 구하고 있었다. 업체와 맘 카페에서 구인을 했는데, 업체에서도 도리도리, 맘 카페에서 면접 오겠다는 세 분도 도리도리. 다 당일 취소였다.
이런 문자를 한두 번 받는 게 아니었다.
쌍둥이는 못합니다. 쌍둥이었어요? 아휴 그럼 못하겠네요. 약 값이 더 나와요. 등등의 말들.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쌍둥이를 보면 골병이 든다. 나 역시 무릎에 결국 염증이 생겨 아이들을 앉고 일어나는걸 당분간 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러니 당일 취소하는 사람을 뭐라 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나와 쌍둥이 아가만 세상에 덜렁 남은 것 같은 이 기분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걸 보니 상처가 되는 모양이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기피 대상이 된 기분.
잠 귀가 밝아서 신랑 외에 친정 엄마, 친한 친구에게도 잠자리(?)는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멜론과 사과는 사랑하는 내 새끼들이니 자연스럽게 될 거라 생각했다.
아가들과 행복한 아침을 맞이 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오산이었다. 웃기지 않은가. 엄마가 아가를 안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 이쁜 우리 아가 잘 잤어?"가 아닌 "아... 팔 저려. 내 팔이 내 팔 같지 않아."라고 시작되는 거.
누군가 함께 잔다는 게 익숙하지 않아 멜론, 사과와 함께 잠자리에 들면 한숨도 못 자고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친정 엄마는 그런 날 타박했다. "어쩌면 그렇게 예민하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 새끼들 안고 자는데 왜 잠을 못 자? 이해를 못 하겠네."
그렇다. 나 역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새낀데 옆에 자는 게 불편하면 어쩌라는 거예요. 너 왜 그러세요?
그러다 고심 끝에 침대 하나를 더 들였다.
신랑과 각자의 침대에서 아가를 하나씩 맡아서 재우기로 했다. 잠투정이 심한 사과를 내가 맡아 재우기로 했는데 사과가 눈이 스르르 감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잠이 들면 최대한 내 몸과 멀찍이 떨어뜨려 놓았다. 비로소 잠을 청할 수 있는 상태가 된것이다. 그럴 땐 내 안의 두 자아가 싸움을 했다.
'엄마면 따뜻하게 안아줘야지! 아가를 이렇게 떨어뜨려 놓으면 어떻게 하니. 넌 정말 이기적이야.’
'아니야. 잘했어. 맨날 팔 베개 해주다간 팔이 떨어져 나갈거야. 너도 편하게 자야지’
어떤 날은 팔 베개를 한 채 잠이 들기도 하는데
‘아놔. 팔 저려. 이 세상 팔이 아닌 거 같아. 그렇지만 난 정말 대단해.’
'이게 칭찬받을 일이냐. 엄마면 당연히 감내해야지.’
엄마면 아가를 안고 잔다는 거,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TV든 영화에서든 아가를 안고 자는 엄마는 있었어도, 아가를 멀찍이 떨어뜨려야 잠드는 엄마는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 자는 거 그게 내 새끼여도 꼭 당연하게 되는 건 아니었다.
살이 빠지지 않는다. 육아를 핑계로 야식과 맥주를 끊지 못했다. 그래서 빠져야 할 부기는 물론 살이 빠지지 않아서 급기야 큰 사이즈 옷을 사고 말았다.
오늘까지만.
오늘까지만.
내일 또 먹으면 사람 아니야.
(응 이젠 사람이 아니야.)
신랑은 내게
"요즘 왜 자꾸 춤추는 사람처럼 옷 입어?"라고 했다. (왜 힙합 하는 사람처럼 옷 입냐는 소리다.)
"어. 요즘 유행이야."라고 말하고 속으로 운다.
누군가 쌍둥이 키우느라 힘들겠다. 얼마나 힘들까. 하면 '응. 많이 힘들어. 죽을 거 같아.'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키울 만해요. 괜찮아요.' 했다. 힘들다고 하면 그 뒤에 따라올 말들이 듣기 싫었다. 힘듦을 100프로 투명하게 말할 수 있는 대상은 신랑밖에 없었는데 사실 그에게서 특별한 피드백은 없었다. '그랬어?' 그래도 그에게 말하고 나면 좀 살 것 같았다. 육아 공동체의 든든함! 그 밖의 대상에겐 축소해서 말하거나 아예 말하지 않았다.
신랑은 또 얼마나 힘들까. 나는 힘들다고 사소한 것 까지 다 말하는데, 신랑은 축소해서 말하거나 하지 않는다. 신랑 나름의 작은 배려. 그리고 그는 나가서 일하고 집에 들어와서 새벽까지 애들 보다 잠 들거나, 아예 밤을 꼬박 새우고 나갈 때도 많았는데 그도 참 짠했다.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많이 귀찮다. '말한 들 알겠어?' 쌍둥이를 직접 키우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 심정을 온전히 알 수 없다. 아기를 좀 키워놓은 사람들은 상황을 미화해서 말이 안 통한다. '그래도 지나고 보면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 이런 말, 젤 싫었다.
쌍둥이를 키우다가 5개월쯤 되었을 때 원형 탈모가 왔었다. (이하 신체적 힘듦 생략) 내 모든 욕구를 내려놓고 두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는 일이란 심신이 지치고 고독한 일이었다.
쌍둥이를 키운다고 하면 두 배가 아닌 네 배 아니 그 이상으로 힘들 거라고 말하는데, 잘 모르겠다. 한 아이만 키워본 적이 없어서. 그런데 가끔 한 아이만 데리고 외출을 하거나, 한 아이의 외출로 다른 한 아이만 집에서 케어할 때 그렇게 한가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가 하나였으면 좋았겠냐 자문하곤 하는데 그건 또 아니라는 아이러니. 두 아이 중에 하나라도 없었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돈다. 두 아이 모두 나와 운명의 끈으로 연결된 존재. 아아.. 내 아가들아.
그렇게 나는 쌍둥이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