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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nezoos Oct 10. 2019

그렇게 쌍둥이 엄마가 된다

끝이 없는 터널

이상하다. 한번 잠을 자기 시작하면 눈이 떠지질 않는다. 아기 둘의 밤중 수유를 어떻게 했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당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한 일주일만 하면 애들이 훅 커서 “엄마. 그동안 힘들었지? 이젠 스스로 밥 먹고 화장실도 갈게." 하는 희망이라도 있다면 일주일만 참으면 돼 하고 견딜만할 텐데. 이건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잖아.



기피대상이 된 기분

베이비 시터를 구하고 있었다. 업체와 맘 카페에서 구인을 했는데, 업체에서도 도리도리, 맘 카페에서 면접 오겠다는 세 분도 도리도리. 다 당일 취소였다.

당일 받았던 취소 문자

이런 문자를 한두 번 받는 게 아니었다.

쌍둥이는 못합니다. 쌍둥이었어요? 아휴 그럼 못하겠네요. 약 값이 더 나와요. 등등의 말들.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쌍둥이를 보면 골병이 든다. 나 역시 무릎에 결국 염증이 생겨 아이들을 앉고 일어나는걸 당분간 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러니 당일 취소하는 사람을 뭐라 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나와 쌍둥이 아가만 세상에 덜렁 남은 것 같은 이 기분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걸 보니 상처가 되는 모양이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기피 대상이 된 기분.  



누군가 옆에서 잔다는 것

잠 귀가 밝아서 신랑 외에 친정 엄마, 친한 친구에게도 잠자리(?)는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멜론과 사과는 사랑하는 내 새끼들이니 자연스럽게 될 거라 생각했다.


아가들과 행복한 아침을 맞이 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오산이었다. 웃기지 않은가. 엄마가 아가를 안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 이쁜 우리 아가 잘 잤어?"가 아닌 "아... 팔 저려. 내 팔이 내 팔 같지 않아."라고 시작되는 거.


누군가 함께 잔다는 게 익숙하지 않아 멜론, 사과와 함께 잠자리에 들면 한숨도 못 자고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친정 엄마는 그런 날 타박했다.  "어쩌면 그렇게 예민하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 새끼들 안고 자는데 왜 잠을 못 자? 이해를 못 하겠네."


그렇다. 나 역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새낀데 옆에 자는 게 불편하면 어쩌라는 거예요. 너 왜 그러세요?

 

그러다 고심 끝에 침대 하나를 더 들였다.

신랑과 각자의 침대에서 아가를 하나씩 맡아서 재우기로 했다. 잠투정이 심한 사과를 내가 맡아 재우기로 했는데 사과가 눈이 스르르 감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잠이 들면 최대한 내 몸과 멀찍이 떨어뜨려 놓았다. 비로소 잠을 청할 수 있는 상태가 된것이다. 그럴 땐 내 안의 두 자아가 싸움을 했다.


'엄마면 따뜻하게 안아줘야지! 아가를 이렇게 떨어뜨려 놓으면 어떻게 하니. 넌 정말 이기적이야.’

'아니야. 잘했어. 맨날 팔 베개 해주다간 팔이 떨어져 나갈거야. 너도 편하게 자야지’


어떤 날은 팔 베개를 한 채 잠이 들기도 하는데

‘아놔. 팔 저려. 이 세상 팔이 아닌 거 같아. 그렇지만 난 정말 대단해.’

'이게 칭찬받을 일이냐. 엄마면 당연히 감내해야지.’


엄마면 아가를 안고 잔다는 거,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TV든 영화에서든 아가를 안고 자는 엄마는 있었어도, 아가를 멀찍이 떨어뜨려야 잠드는 엄마는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 자는 거 그게 내 새끼여도 꼭 당연하게 되는 건 아니었다.



왜 자꾸 춤추는 사람처럼 옷 입어?

살이 빠지지 않는다. 육아를 핑계로 야식과 맥주를 끊지 못했다. 그래서 빠져야 할 부기는 물론 살이 빠지지 않아서 급기야 큰 사이즈 옷을 사고 말았다.


오늘까지만.

오늘까지만.

내일 또 먹으면 사람 아니야.

(응 이젠 사람이 아니야.)


신랑은 내게

"요즘 왜 자꾸 춤추는 사람처럼 옷 입어?"라고 했다. (왜 힙합 하는 사람처럼 옷 입냐는 소리다.)

"어. 요즘 유행이야."라고 말하고 속으로 운다.



그렇게 쌍둥이 엄마가 된다.

누군가 쌍둥이 키우느라 힘들겠다. 얼마나 힘들까. 하면 '응. 많이 힘들어. 죽을 거 같아.'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키울 만해요. 괜찮아요.' 했다. 힘들다고 하면 그 뒤에 따라올 말들이 듣기 싫었다. 힘듦을 100프로 투명하게 말할 수 있는 대상은 신랑밖에 없었는데 사실 그에게서 특별한 피드백은 없었다. '그랬어?' 그래도 그에게 말하고 나면 좀 살 것 같았다. 육아 공동체의 든든함! 그 밖의 대상에겐 축소해서 말하거나 아예 말하지 않았다.


신랑은 또 얼마나 힘들까. 나는 힘들다고 사소한 것 까지 다 말하는데, 신랑은 축소해서 말하거나 하지 않는다. 신랑 나름의 작은 배려. 그리고 그는 나가서 일하고 집에 들어와서 새벽까지 애들 보다 잠 들거나, 아예 밤을 꼬박 새우고 나갈 때도 많았는데 그도 참 짠했다.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많이 귀찮다. '말한 들 알겠어?' 쌍둥이를 직접 키우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 심정을 온전히 알 수 없다. 아기를 좀 키워놓은 사람들은 상황을 미화해서 말이 안 통한다. '그래도 지나고 보면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 이런 말, 젤 싫었다.


쌍둥이를 키우다가 5개월쯤 되었을 때 원형 탈모가 왔었다. (이하 신체적 힘듦 생략) 내 모든 욕구를 내려놓고 두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는 일이란 심신이 지치고 고독한 일이었다.

쌍둥이를 키운다고 하면 두 배가 아닌 네 배 아니 그 이상으로 힘들 거라고 말하는데, 잘 모르겠다. 한 아이만 키워본 적이 없어서. 그런데 가끔 한 아이만 데리고 외출을 하거나, 한 아이의 외출로 다른 한 아이만 집에서 케어할 때 그렇게 한가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가 하나였으면 좋았겠냐 자문하곤 하는데 그건 또 아니라는 아이러니. 두 아이 중에 하나라도 없었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돈다. 두 아이 모두 나와 운명의 끈으로 연결된 존재. 아아.. 내 아가들아.


그렇게 나는 쌍둥이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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