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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nezoos Oct 09. 2019

나 외로워 문 닫지마

"나 외로워. 문 닫지 마."

실제로 신랑에게 한 말이다.

한 주간 출장과, 산더미 같은 업무로 신랑은 집에서 시간을 거의 보내지 못했다. 주말이 되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급기야 신랑은 집으로 일을 가져왔다.

신랑이 문을 닫고 작업실로 들어갔다. 그러면 난 멜론과 사과랑 외딴섬에 남겨진듯한 느낌을 받았다. 닫힌 문을 향해 눈을 흘기고, 언제 나오나 퇴근 시간 기다리듯 바라본다.

또 다른 날, 그가 낮에 일을 또 봐야 한다고 작업실을 들어가며 문을 닫으려고 했다.
"오빠 나 외로워. 문 닫지 마."

이 대사는 무엇인고. 스스로도 말해놓고 좀 웃겼는데, 신랑도 웃겼는지 '풋'했다.
외롭다니. 하루 종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랑 매일 같이 있으면서 외롭다니.

그러나 육아는 외로웠다. 말이 안 통하는 핏덩이들과 하루 종일 붙어있는 건 나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의 시간이 없다는건데, 그것이 사람을 매우 고독하게 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책도 읽고 신앙에 기대기도 했다. 그렇지만 채워지지 않는 고독함이란. 그나마 하는 친구들과의 통화도 '어머 애 깼다.'로 종료되었다. 언제 끊길지 모르는 통화는 깊은 호흡으로 대화할 수 있는 것을 방해했다.

그러나 육아라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외로움은 커졌지만 전체적인 감정의 덩어리에서의 외로움은 적어졌음을 느낀다. 보석 같은 존재를 만들었다는 기쁨이랄까. 감동이랄까. 든든함이랄까. 이 감정은 육아하면서 '늘' 느끼는 외로움을 '가끔씩' 상쇄 시킨다.  

아이가 꺄르르 웃을 때, 바둥거릴 때, 이유식을 꿀떡꿀떡 잘 받아먹을 때, 새근새근 잠자는 숨소리를 들을 때, 찹쌀떡 같은 볼과 엉덩이를 볼 때, 기저귀 갈아 주면서 느끼는 스킨십. 그 모든 찰나의 시간들. 그 찰나가 날 버티게 해주었다.

찰나의 기쁨이 외로움을 상쇄시켜주긴 하지만, 그래도 나 많이 외로워. 그러니까 신랑! 문 좀 닫지 말아줄래. (실제로 신랑이 문을 열어놓고 일하니까 외딴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엄마가 외로워도 아가들은 그저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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