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inezoos Oct 29. 2019

아이 돌보미 선생님께

아이 돌봄 서비스의 좋은 사례

나는 정부의 지원을 톡톡히 본 사례이다. 한 달의 대기 기간이 있었지만, 곧 아이 돌보미 서비스를 받게 되었다. 이전에 산후 도우미 님께 크게 데었던 터라 어떤 분이 올지 긴장이 되었다. 요번에도 그때처럼 제2의 시어머니가 나타나면 어쩌지. 타인을 집에 들이는 동시에 우리 집의 민낯을 다 보여줘야 할 텐데, 너무 불편할 것 같아. 또 언론에서 종종 나오는 폭력적인 분이 오면 어쩌지. 처음 보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 혹시 몰라 CCTV를 두 개나 설치했다. 아기 돌보미 서비스는 대기가 길기 때문에 잘 맞지 않아도 서비스 종료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제발 좋은 사람을 보내주세요.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돌보미 선생님이 오신 첫날이 기억이 난다. 똑 단발에 안경을 쓰시고,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들어오셨다. 공적으로는 업무 관련해서 설명을 하고 사적으로는 말씀을 많이 하거나, 프라이버시 침해하는 걸 힘들어한다고 말씀드렸더니


- 잘 되었어요. 저도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처음엔 이 선생님에게서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나와 신랑에게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멜론과 사과하고 놀아줄 땐 까르르 함박웃음으로 봐주셨다. 본인에게 주어진 업무는 확실히 하고, 그 외의 업무는 일절 손을 안 댔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되면 짤 없이 바람같이 떠났다. '와 이분 프로다.' 모든 것에 확실하고 선을 넘지 않는 업무 스타일은 나와 잘 맞았고 점점 그녀를 신뢰를 하게 되었다. 한 사람을 신뢰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과정이 필요한가. 그 쉽지 않은 일이 돌보미 선생님과 이뤄진 것이다.


그녀는 나의 육아관을 존중해주고 잔소리 한번 한 적이 없으며, 나 역시 그분의 아기 돌봄 스타일에 대해 터치하지 않았다. 점점 우린 손발이 척척 맞아갔고, 멜론과 사과가 하루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업무 관련 외에 사적인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점점 정이 들었다.


하루도 지각하지 않고 기복 없이 성실히 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희일비하는 나는 안정감을 느꼈다. 육아 7개월쯤 산후 우울증이 온 건 아닌가 싶었던 때, 한결같이 매일 출근하는 육아 공동체가 있다는 존재감만으로도 위로를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때 도움이 되었던 건 친정엄마도, 신랑도, 친구도 아니었다. 돌보미 선생님의 힘이었다.


쌍둥이라 혼자 이동이 불가능할 때도 함께 해주셨다. 가령 멜론과 사과가 동시에 아프면 병원을 함께 가주셨고, 문화센터도 함께 했다. 친정, 시댁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비교적 편하게 쌍둥이 육아를 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선생님 덕이었다.


그렇게 우린 좋은 파트너인 동시에 육아 공동체로 쌍둥이를 길러내고 있었다.  선생님은 우리 집에서 꼭 1년을 함께 했다. 정부 지원이 끝이 나고, 아기들을 어린이 집을 보낼 시기가 되었다.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고, 선물과 함께 편지를 준비했다. 선물을 드리면서 '감사했어요.' 말하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우린 같이 울었다.






제가 이렇게 선생님한테 편지를 쓰게 될 날이 올 줄 몰랐어요. 말로 전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편지로 써요.

내일이면 정말 마지막 날이네요. (그렇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 안 해요. 다음에 시간 될 때 꼭 와주셔요.)


1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네요. 독박 육아로 심신이 지쳐있을 때 선생님이 오셨어요. 처음에는 선생님과 잘 맞을까 싶었지만, 어느 순간 손발이 너무 잘 맞아서 계신 동안 너무 좋았어요.


그동안 육아를 도와주러 와주셨던 분들 중 시험관으로 쌍둥이를 낳았는지 하는 일은 뭔지 이것저것 사적인 걸 안 물어보신 분이 없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제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고, 일 외에는 사적인 질문은 안 하셨죠. 그리고 겨울이(강아지)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으셔서 좋았어요. 감사했어요.

  

그리고 지각 한 번 안 하시고, 매일 변함없이 성실히 일하는 모습이 육아하면서 일희일비하고 기복이 심한 제게 힘이 되었어요.


그리고 집에만 붙어있는 걸 힘들어하는 자유로운 영혼인 저를 숨 쉬게 하셨어요. 매일 외출하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후에 멜론과 사과의 아기였던 시절을 떠 올리면 선생님이 먼저 떠오를 거예요. 아이들이 안정감 있고 성실한 아이로 성장하면 그건 선생님 덕일 거예요. 그동안 저를 도와주시고, 울 쌍둥이를 키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도 멜론, 사과도 선생님이 그릴 울 것 같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