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첫아이로 딸을 낳았다. 친할머니는 다음에 아들 낳으면 돼. 하고 아쉬움을 숨기지 않으셨다. 엄마는 아이를 또 가졌고 둘째로 딸을 낳았다. 주변에서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아빠는 아이를 한번 안아보지 않고 엄마를 째려보고는 술을 마시러 나갔다. 그때 낳은 둘째 딸이 바로 나다. 엄마는 같은 시기에 출산한 지인들이 모두 아들을 낳아서 엄청 눈치가 보였단다. 그 뒤로 엄마는 아들을 꼭 낳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가졌고 진짜로 아들을 낳으셨다. 그렇게 나는 삼 남매 중 둘째가 되었다.
쌍둥이 육아를 한 지 1년이 지났다. 출산 후 많은 것이 바뀌었고 쌍둥이 육아가 주는 피로함은 지금까지 겪어 본 피로함과 다른 것이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치고 스스로 무너져 가고 있을 때 나를 바로 잡아줬던 많은 귀인들이 있지만, 가장 도움이 된 것은 하루 두 시간 개인시간을 가진 것이었다.
출산 후 하루라도 안 나간 적이 없다. 필사적으로 나가서 카페에 있다 왔다. 처음에는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육아에 대한 생각은 일절 않고 피로를 풀었다. 그러다 문득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원래의 나와 새로 생긴 엄마라는 자아가 잘 통합이 될 것 같았다. 그때는 엄마라는 호칭 조차 생소하던 때였다. 그렇게 매일 글을 쓰기 시작했고, 천천히 엄마라는 새로운 자아를 받아 드리게 되었다.
하루 두 시간씩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돌보미 선생님과 계약을 했기에 가능했다. '하루 두 시간은 무조건 나갔다 들어온다.'가 돌보미 선생님께 요구한 것 중 하나였고 그것은 잘 이뤄졌다. 그 시간 동안 매일 글을 썼고 때로는 운동을 했다. 쌍둥이를 돌보미 선생님께 홀로 맡기고 '노는 건' 때로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시간으로 인해 육아의 힘듦보다 아이들의 반짝 거리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고, 변해가는 삶을 붙잡지 않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무엇보다 진정한 독립을 할 수 있었다.
82년생 김지영은 내 삶과 너무 비슷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넘어지지 않고 극 중의 김지영과 같은 우울감에서 벗어 날 수 있었던 건 개인 시간을 갖고, 글을 쓰고 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부 월차를 사용해서 한 달에 한 번 친구를 만나 근사한 장소에서 좋은 음악을 들으며 좋은 음식과 술 한 잔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숨을 쉬고 육아를 할 수 있었다.
출산한 모든 여성들이 출산 전에 하던 것 하나 정도는 놓치지 않고 '나쁜 년'소리를 들으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놀면 죄악시되는 분위기는 바뀔 필요가 있다. 세상에 다양하고 재미있게 노는 엄마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