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산책길은 추우면서 때로 더웠다. 그래도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여건과 삶이 다행이다 싶다가도 매일 터지는 부동산 이슈에 머리가 아파온다. 지금 직장에 입사한 지 13년(경제생활은 그전부터 했지만 아르바이트, 파트타임 강사 등등은 생략하자), 결혼한 지 10년- 아직 내 집 하나 없이 세를 전전하는 하우스푸어이지만 긍정적으로,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늘 열심히만 살아온 터라 최근에는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즐겁게 사는데 노력까지. 무척이나 나태하고 손이 느리지만 성격은 급하고 하고자 하는 일에서는 완벽주의 기질이 있어서 자기반성과 자기 학대를 반복하면서 자존감이 밑바닥으로 떨어진 상태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간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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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육아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육아책과 심리학 책을 읽어내리다가 접하게 된 ‘자기자비’ 라는 개념이 나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해주는 말이었고 위안이었다. 그렇게 내 삶을 조금은 흐릿하게, 나태하게, 합리화시켰다. 때때로 찾아오는 죄책감(?)은 애써 외면하였고 쉬는 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것으로 족하다며 다독거렸다. 리프레쉬에도 이유를 만들어야 할 수 있는 성격이고, 삶이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
직장생활만으로 즐겁게 살기는 힘들다. 거기에 집안일과 육아를 병행한다는 것은 최근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예능 프로에서 자주 나오는 여성 연기자들의 고충은 애교로 보일만큼 각자의 상황과 사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3년 육아휴직 후 복직했을 때의 해방감을 원동력으로 버텼던 첫 해는 그래도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재난처럼 닥쳐온 전염병 감염 위기 시국은 말 그대로 삶을 ‘재미없게’ 만들었다.
하루를 마무리한다거나 반성할 시간도 없이 퇴근하고 씻고 바로 곯아떨어지는 하루하루 속에서도 작은 즐거움을 찾지 않으면 의미 없는 시간과 세월 속에 매몰될 것 같다. 이것조차도 또 다른 강박일 수 있겠지만 자투리 시간에 스트레칭을 하는 것조차 버겁더라도 즐겁게 살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모처럼 산책 겸 운동도 하고, 체중조절 식단을 체크하고, 한동안 켜보지 않았던 이북리더기도 뒤적거리고, 출근하는 날에는 하루 한 시간 얼굴 보기 힘든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하지는 않고 즐겁게 모바일 게임, 유튜브 시청)과 공간을 공유하고, 체중 조절 때문에 평일 저녁은 먹지 않지만 쉬는 날에는 함께 먹겠다고 말한 것을 지키고 3일 만에)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 외, 시간도 여유도 없어서 멀리했던 덕질도 조금씩 재가동하면서 웹서핑도 하고, 화장을 할 때마다 마음에 안 들었던 주근깨 제거 시술도 받고 오고, 코로나 이후 네일숍에 가지 못하는 대신 유행하는 셀프 네일도 하고,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서 브런치를 뒤적거렸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는 애매하지만 나는 그래도 남편이나 아이들, 가족이나 부모에게 자아를 의탁하지 않는(어떤 의미로는 ‘나’라는 사람이 너무 우선이라 가끔은 가족들이 서운해하는) 편이라 즐겁게 살고 싶다-라고 다짐했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여러 가지 것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오히려 욕심이 너무 많아서 이 모든 것들을 다 하고, 더 잘하고 싶어 해서 그 욕심을 누르는 연습을 많이 했는데 그러다 보니 또 삶이 재미가 없어진 것 같다.
이것 찔끔 저것 찔끔이 될까 봐 시작하지 않았던 브런치 글쓰기는-
그래서 생각나는 주제들을 다양하게, 그리고 편하게 써보고 싶다. 이것이 또 다른 투두리스트, 할일이 되지 않도록 하고 싶은 이야기를 즐겁게.
베로니카. 즐겁게 살기로 결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