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행위에 대해
지구에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기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의 분자에서 시작한다. 분자들이 모여 단세포를 이루고, 다세포를 이뤄 점차 진화해 형성된 생명의 다양성. 그렇기에 그 다양성 속에는 연결된 본질적인 공통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생존은 생명 활동의 근본적인 목적이라는 자명한 사실과, 그렇기에 진화는 주어진 환경에 맞춰 살아남은 최적의 DNA들을 전달하는 번식 행위가 이뤄진다는 것 등. 번식 행위에 있어 대부분의 동물들은 ‘암수(와 그 이상)’로 구별되고 짝짓기를 통해 새끼를 낳음으로써 해당 종의 번식을 도모한다. 한편, 교미의 방식과 적극적인 구애의 주체는 다양하다. 그 중 새는 ‘수컷’으로 규정지어지는 새들이 구애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수컷 새들은 암컷에게 자신이 뛰어난 DNA를 지니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짝짓기 철이 되면 한껏 자신을 치장하고 구애의 춤을 연습한다.
푸른 마나칸은 난이도가 높은 구애의 춤을 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3마리의 동료 새의 도움을 받아 합동 춤을 선보인다. 최고의 춤선을 선보이기 위해 구애의 상대를 만나기 전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그리고 어린 마나칸을 초빙해서 리허설을 하기도 한다. 이들의 연습과 리허설은 구애의 주인공인 새가 만족할 때까지 진행된다. 마침내 대망의 시간이 다가오면, 푸른 마나칸 무리는 최선을 다해 합동 무대를 펼친다. 오르락 내리락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를 반복하며 현란한 색채의 깃털과 현란한 몸짓을 보인다. 무대의 결과는 어땠을까?
구애하는 새들의 모습을 보니, 자연스레 인간의 사랑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 자아를 빼고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할까? 무언가를 인지한다는 것은 늘 자기연관성을 한 켠에 담아둘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구애의 춤을 추는 행위가 재미있고도 아름답게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이라는 행위가 마냥 “사랑해”로 담백하게 오간다면, 그건 더 이상 사랑이 아닐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생존(번식)’의 과정으로 바라본다고 해도, 아니 생존의 과정이기에 더욱 그렇다.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실천은 ‘사랑’이다. 생명은 관계 속에서 탄생하며, 사랑은 그러한 관계의 근원이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존재는 그 관계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하고, 마땅히 정성을 다해야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너를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 사랑하는 너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너와의 관계에 정성을 쏟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만나기 전부터 사랑하고자 하는 이가 다가올 자리를 가꾸고, 자신을 가꾸고, 끊임없이 구애의 춤사위를 준비하는 푸른 마나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