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태권도는 목표 지향적 직장인의 성취감 프로젝트였다.
심사가 끝나고 한 달 동안 결과를 기다리면서도 도장에 나갔다. 대단한 결심이었다기 보다도 자연스럽게 그 다음 단계가 궁금해졌다. 태극을 지나 1단 부터는 고려 품새를 수련한다. 그냥, 그것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계속 나갔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도장에서 검은 띠를 수령하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사범님이 품띠를 푸르고 검은띠를 직접 매주셨다. 서로 고생했다는 인사를 나누는데 꽉 매어진 검은띠처럼 내 마음 속에서도 무언가 매듭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1년 반 남짓. 나름의 자그맣고도 큰 도전이었던 태권도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걸 잘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 같은 걸 받은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걸 잘 할 수 없다는 걸 알게되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잘하고 싶었고, 실제로 마음먹은걸 잘 해낼때만 스스로에게 합격점을 주던 습관은 분명 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태권도를 하는 동안 내가 잘할 수 없는 수많은 순간들과 마주해야 했다. 애초에 거들떠 보지도 않던 운동을 시작했던 것이기에 각오는 했지만 때마다 오는 좌절감도 상당했다. 하지만 해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기기 보단 '아 내가 이럴 수도 있구나' 인정하는 연습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일상에도 힘을 빼게 되었다. 목숨걸고 달려들던 마음도 조금은 편안해졌다.
요령과 대충은 언제가 태가 나기 마련이다. 기본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으니 절대 잊을 수 없을거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정말 아는게 아닐 수도 있음도 배웠으니 자만하진 말고. 빨리 완벽해지기 위해 조급해질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말로 나를 안심시켜선 안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저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 다음 점을 제대로 이어줄 것임을 믿고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다시 또 아득했던 그 때의 마음들이 조금씩 올라오려 할 때면 태권도를 하며 느꼈던 마음들을 하나씩 꺼내보아야지 다짐한다.
물론 결과는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1단을 따지 못했다 해도, 불합격했다는 결과 역시 중요했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 사실 자체에 머물러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은 없도록 해보려 한다. 그런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되짚어보겠지만 거기서 끝. 이제와 어찌할 수 없는 경우의 수들을 붙잡고 너무 나를 몰아세우진 않을 것. 그럴 필요 없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피드백이 아닌 피드포워드를 할 것. 그건 스스로에게도 앞으로 함께 할 모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누구와 뭘 하든 그러하기 위해 과정의 소중함에 대한 마음가짐은 세트여야 할 것이다.
일단 태권도는 잠시 쉬기로 했다. 지도해주셨던 사범님도 곧 다른 일을 알아본다고 하시고, 성인 태권도장으로 옮겨 제대로 배워볼까 싶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태권도를 계속해서 2단에 도전할 지, 새로운 무언가를 해볼 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이제 더이상 내 하루가 출근에서 퇴근으로 끝나지 않을거란 확신이다. 내 삶은 결국 오늘의 하루가 모여 채워지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내 하루를 그저 직장생활로만 채워 넣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 하루에 영향을 주는 것들이 회사 안보다 안팎으로 확장될 때 얼마나 큰 자극과 영감이 되는지, 얼마나 새로운 마음과 생각을 갖게 되는지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