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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나 Sep 11. 2024

우리 할매와 나의 욕심

우리 할머니의 등교(주간보호센터)

우리 할매는 1933년생으로 91세이시다. 작년에 노환으로 입원하시기 전까지는 버스 노선도 다 외우시고 지팡이도 짚지 않고 걸어 다니시고, 된장이며 고추장까지도 집에서 직접 담그시던 분이셨다.

그러던 우리 할매가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고 입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귀도 잘 안 들리게 되시고, 치매 증상도 심해지시며, 대소변을 가릴 수 없어 기저귀를 차고 생활하셨다. 깔끔쟁이에 먼지 한 톨도 보이면 안 되고, 어딜 나가실 때도 화장을 하고 다니시던 분이다. 작년에 병원에 계실 때 급하게 귀국을 해서 할매의 막냇동생 두 분과 면회를 갔을 때 동생들도 못 알아보셨지만 내 얼굴을 보며 활짝 웃으시던 우리 할매를 봤을 때 나는 덜컥 겁이 났었다. 나도 못 알아보시면 어떡하지?? 그런 나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 할매, 내 봐봐... 내 누군데???"

" 누구긴 누구야, 바다 건너온 우리 하나지...."

울지 말아야지... 절대 할매 앞에서는 안 울어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했건만... 그 다짐은 할매의 그 한마디에 한순간에 무너졌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집에서 지내실 때도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해서 대소변을 받아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런 우리 할매의 곁에 있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더 힘들었다. 내가 살려고, 우리 할매를 버리고 일본으로 간 것은 아닌지..... 과연 내 선택이 옳은 것인지... 늘 가슴속에 돌덩이를 얹어놓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도 길에서 마주치는 노인분들을 보면 한없이 쳐다보고는 했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집으로 모셔서 아빠가 꾸준히 다리운동도 같이 하고 대소변도 가릴 수 있게 되면서 7월 1일부터 우리 할매는 주간보호센터를 다니기 시작하셨다. 집에서는 매일 침대에 누워계시면서 티비만 보던 우리 할매는 주간 보호센터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내가 영상통화를 할 때 "유치원 잘 다녀왔나~?"라고 물으면 " 유치원 아니고 학교다!!"라고 대답을 하신다. 하지만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는 모습이 나는 상상이 되질 않았다. 이번 귀국을 통해서 나는 우리 할매의 훨씬 나아진 모습에 또 한 번 울컥했다. 이제는 손잡고 화장실까지 가서 본인이 양치와 세수도 하신다!!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

하루라도 편하게 보내시라고 사드린 가정용 전동 침대에서 꼼짝도 못하던 우리 할매! 아침 9시부터 5시 반까지 주간보호센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 오시면 나는 그때부터 우리 할매의 껌딱지가 된다. 우리 할매도 나만 보면 "언제 또 가노~~?"라고 몇 번이나 물어보시고, 내가 잠시라도 안 보이면 나를 찾으신다. 내가 " 할매~ 그러면 내 가지마까? 내 안가믄 누가 돈 벌어서 내 먹여살리노?"라고 물으면 우리 할매는 "내가 먹여살리지!!!"라고 말씀하시다가도 " 그래도 니 생각하믄 가는 게 맞지~"라고 풀 죽어서 말씀하신다. 그러면서도 밤에 잠이 드셔서도 내 손을 꼬옥 잡고 놓지 않으셔서 나는 잘 때도 한쪽 팔은 할머니 손을 잡고 자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한쪽 팔만 벌서는 자세로 자고 있다. 보이지 않는 투명 깁스.... ㅋㅋ

그래도 좋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사셨으면 하는 게 나의 욕심이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한 우리 할매!! 더 고생은 안 하시고 편하게 가셨으면 하면서도 비록 바로 곁에 있지는 못하지만 더 오랫동안 살아계셨으면 좋겠다는 내 욕심!! 이제는 조금씩 보내드릴 준비도 해야 하는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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