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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나 Sep 14. 2024

아빠와 나

우리 친해질 수 있을까??

내 기억 속의 아빠는 공포의 대상 그 자체이다. 아빠가 친구를 만나는 날이나, 회사에서 회식을 하고 오는 날이면 오늘은 제발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게 기도하는 날이었다. 술 취한 아빠는 나에게 손을 대는 일은 없었지만 다른 가족들에게는 폭력도 휘둘렀고, 나에게는 나를 낳고 돌아가신 엄마의 이야기를 하거나, 다 같이 죽자고 가스 배관을 자르려고 하는 그런 아빠였다.


나는 일본에 가기 전까지 서른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9시 통근시간이 있었고, 머리스타일부터 시작해 옷스타일까지 아빠가 좋아하는 스타일, 대학과 전공 그리고 취업까지 모두 아빠가 하라는 대로 했고, 단 한 번도 그런 것들에 대해 반문을 하거나 어긴 적이 없었다. 아빠가 술을 마시고 그렇게 행동하는 건 다 나를 낳고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나는 내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나를 탓했다. 늘 나에게 " 니 때문에 엄마가 더 오래 살긴데 오래 못살았다. "라는 얘기를 들었고 나는 웃으면서 어떻게든 술 취한 아빠가 잠들 때까지 대화상대를 했어야 했다. 술을 안마실 때는 늘 말이 없는 아빠였지만, 나에게는 그런 아빠의 기억보다는 난폭하고 무서운 아빠에 대한 기억이 더 많았다. 그래서 나는 도망쳤다. 일본으로..... 그리고 늘 주변사람들에게 말했었다. 우리 할매만 돌아가시면 가족과 인연을 끊겠다고...


이번 귀국은 나에게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첫 번째, 할머니와 좋은 시간 많이 보내기! 두 번째, 아빠에게 지금 나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빠와 대화하기!

하지만 아빠에게 과연 내 상황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는 한국에 오기 한 달 전부터 아빠와 대화를 할지 말지에 대해 엄청나게 고민을 했었고, 그때마다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공포감이었다. 상담선생님과 이야기했을 때, 감정적인 부분보다는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한다는 느낌으로 대화를 해보라고 어드바이스를 해주셨다.

가족과 인연을 끊겠다고 했으나 나는 내 자신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이대로 내 감정을 속이기도 싫고, 더 이상 피하기만 해서는 나의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없다는 생각에 이번에 한번 부딪쳐보자고 각오를 했다.

집에 도착하고 둘째 날, 낮에 아빠와 둘만 있는 시간이 있었다.(할머니는 주간보호센터에, 엄마는 농협 부녀회 일로 집을 비운 상황이었다) 아빠가 점심과 함께 반주를 하셨고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나는 큰 마음을 먹고 나의 현재 상황과 그동안 아빠가 미웠고 무서웠다는 이야기를 했고, 되돌아온 아빠의 말에 나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 내는 내 딸이 뒤도 안 돌아보고 가족과 내 나라를 떠나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는 예감을 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을 해봤는데 내가 왜 너희한테 그런 트라우마를 줬을까 하고 후회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아빠에 대해 공포와 원망을 가지고 있다. 한 번의 대화로 40년의 묵은 감정이 다 없어지지도 풀어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 아빠는 아직도 자기 기준에서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싫어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분이다. 하지만 이제 70이 넘는 아빠가 치매인 할매를 8개월 동안 일도 그만두고 간병을 하고, 할머니가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나 동생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을  번도 한 적이 없을 만큼 지원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함도 느낀다.

내가 완벽하게 아빠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내 감정을 속이면서 아빠를 대하는 것은 조금씩 조금씩 줄이고, 아빠와 마주 보며 대화할 시간도 가져볼까 한다.

아빠! 우리 과연 친해질 수 있을까?

주간보호센터 가기 전 등교준비하는 할매와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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