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나, 공포감을 넘어선 미움과 원망
앞선 글들에서도 아빠와의 관계가 일반적인 부녀관계가 아닌 것에 대해서 쓴 적이 있다. 아빠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공포감, 그다음에 오는 감정은 미움과 원망이다. 나는 소리와 냄새에 민감한 편이다. 소리에 대해서는 특히나 잘 시간이 되면 더 민감해진다. 그 계기를 잘 생각해 보면 아빠가 술에 취해 들어오는 시간이 한참 잠에 빠져있어야 할 시간이었고, 아빠가 들어오는 문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나는 긴장모드에 들어간다. 오늘은 아무 일 없이 넘어갈까?라고 생각하며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소리에 집중하며 할머니의 품속으로 파고든다. 아빠가 계단을 올라가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소리에 집중한다. 아빠가 잠이 들었는지, 아니면 또 술을 찾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각종 수면제와 안정제를 복용하고 잠이 들어도 조그만 소리가 들리면 금방 잠에서 깬다. 나는 일본에 오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빠가 술을 마시고 저렇게 하는 건 나 때문일 걸라고 생각했다. 나를 볼 때마다 나 때문에 자신의 여명을 앞당긴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나기 때문일 거라고.... 아빠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써내려 갈 두 가지 일이 공포감을 넘어서 아빠를 미워하고, (이런 말이 자극적일 수도 있지만 솔직히) 아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할매는 엄마(지금의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다. 엄마는 천성적으로 행동도 느릿느릿하고 살갑지도 못하고 한 번씩 말을 그냥 내뱉어버리는 성향이 있다. 그런 엄마가 우리 할매를 날 낳아준 엄마와 비교라도 하듯 좋게만 보지는 않으셨다. 90이 넘는 나이에 유일한 낙은 일주일에 한 번, 이주일에 한 번 병원에 가서 영양제를 맞는 것이었는데, 어느 날 엄마가 그런 할매에게 그놈의 영양제 좀 그만 맞으라고 했고, 그에 발끈한 우리 할매는 "내가 니그한테 병원비를 달라했나, 병원을 데려다 달라했나. 밥을 챠려달라하나, 내가 내 돈 가지고 영양제 맞으러 가는데 니가 먼 상관이고"라고 말을 했고, 그 말이 어떻게 아빠한테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날 밤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새벽에 술이 잔뜩 된 아빠가 할매와 내가 자고 있는 방문을 걷어차고 들어오더니 소리소리를 질렀다. 내가 돈 못 벌어다 준다고 무시하냐며.... 아빠는 사실상 50이 넘을 때까지(할배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 할배한테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고, 일을 하지만 사실상 5 가족이 생활할 만큼 벌지 못해서 상당히 그런 상황에 대해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도 역시나 밤새 꼬박 난리난리가 났었고, 며칠을 술에 찌들어서 생활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빠는 나를 불러서 "전셋집 얻어줄 테니까, 네가 할매 데리고 나가라"라고 했다. 사실상 본가를 구매하는데 아빠는 돈 한 푼 보탠 적이 없다. 할배의 퇴직금과 할배할매가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산 집이다. 그래서 아빠도 늘 나와 동생에게 <이 집의 명의는 아빠지만 실제로는 할매집이다>라고 얘기했었는데 이건 무슨 멍멍이 소리인가... 결국 이 사건은 할매가 말실수했다고 아빠랑 엄마한테 사과하면서 끝났다. 나는 이 사건을 겪으면서 나갈 사람은 아빠 자신이 아닌가, 뭐가 저렇게 당당해서 할매와 나보고 나가라고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두 번째 사건이 내가 일본행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일본에 오기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던 때였고 회사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빠는 술에 취해서 가스 밸브선을 자르고 불을 붙여 다 같이 죽자고 난리를 쳤었고, 그런 아빠를 말리다가 나는 드디어 폭발해 버렸다. <죽으려면 혼자 죽어라, 다른 사람들 괴롭히지 말고!>라고... 고함을 지르며 아빠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빠의 눈은 평소의 아빠가 아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목을 조르며 죽으라고 했다. 니 때문이라며... 니만 없었어도... 라며... 지금까지 술주정을 부려서 나한테 만큼은 손을 대지 않던 아빠였는데 내 목을 조르며 죽으라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래 죽일라믄 죽여라!"라고 했다. 할매와, 엄마, 동생이 달려들어서 말리고 결국은 경찰들까지도 출동을 했다.(새벽에 심상치 않은 싸움소리에 아랫집에서 신고를 했던 것이다.) 경찰들이 오고 아빠를 나에게서 떼어내자 나는 과호흡이 시작되었다.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었고, 119구급차를 경찰분들이 불러서 급하게 응급실로 향했다. 그런 상황에 보호자로 따라나선 건 우리 할매뿐이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의사분이랑 간호사분들이 천천히 숨을 쉬라고 계속 말씀하셨지만 그게 쉽게 되지 않았다. 왜냐면 정말 정신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기 때문에 더 호흡을 가다듬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병원에서 안정을 되찾고 다음날 아침 회사에 결근을 할 수 없어서 할매와 함께 택시로 집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옆에는 우리 할매뿐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맞이한 광경은... 할매와 나를 제외한 세 식구가 아침밥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하아????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정말 그 광경이 눈에 들어온 순간 나는 아!! 할매랑 나는 가족취급도 못 받는구나... 이게 무슨 가족이야? 이건 뭔가 잘못됐어...라고 생각했다. 그 상황에 엄마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출근해야지, 밥 먹어라.."라고 했고, 나는 그 말에 대답도 안 하고 씻고 출근했다.
더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지만 위의 두 사건으로 인해 나는 일본으로 오는 것을 결정했다. 그래서 그런 집에 우리 할매를 놔두고 왔다는 것에 죄책감을 항상 가지고 있다. 작년에 할매가 병으로 입원을 하고 치매판정까지 받으면서, 집에서 아빠가 일 년 정도 간호를 했었다. 그 일 년 동안 <더 이상 못하겠으니 요양병원으로 보낼란다. 그러니까 내 원망하지 마라>라며 나에게 이야기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그 일 년 동안 아빠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안다. 전문가들도 힘든 게 치매노인에,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누워있는 노인이라는 것도 안다. 지금 우리 할매는 대소변도 가리고, 혼자서 조금씩 걷기도 한다. 그러게 되기까지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런 아빠가 고마우면서도 아빠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미움과 원망이 아직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