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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자가 성당에

하이고, 주책이야... 창피하고 민망해서....

by 이하나

우리 집은 할매가 독실한 불교 신자이신지라 할매 밑에서 자란 나도 자연스럽게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풍경소리가 울릴 때마다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사람이 적은 법당에 앉아 기도하는 할머니 옆에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불경이 적힌 책을 따라 읽곤 했었다.


작년 9월쯤이었나.... 공황장애의 증상과 우울증 증상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급격히 외로움과 공허함이 나를 잠식했었다. 정말 그 누가 대상이 되어도 좋으니 빌고 싶었다. 날 좀 어떻게든 해달라고... 일본은 절이라고 해도 뭔가 한국과는 다른 느낌이라 가는 것이 불편했고, 신사 같은 곳을 가도 그곳엔 어떠한 신이 모셔져 있는지도 모르거니와 외국인 소원을 뭐 들어주기나 하겠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다 떠오른 곳이 성당! 성당은 대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모태신앙으로 천주교였던지라 그 친구를 따라서 성당을 몇 번 따라갔던 적이 있어서 거부감이 없었다. 집 근처에도 성당이 있었지만 천주교라는 종교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내가 가기에는 뭔가 거리감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메구로라는 역 근처에 한인성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성당이 있는 메구로역까지는 시나가와역에서 한 번만 갈아타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공황장애의 심한 증상으로 덴샤를 탈 수 없던 나는 무려 7번을 내렸다, 탔다를 반복하며 성당까지 도착했다. 처음 오는 사람이 마음대로 예배에 참가해도 되는지 몰라, 우선은 사무소를 찾아서 사정을 얘기했더니 성당은 그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이니 환영한다고 말씀해 주셨고, 수녀님 한 분께서 평일은 지하성당에서, 주말은 대성당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가르쳐주시며, 지하 예배당 안내부터 예배가 끝날 때까지 세심히 옆에서 알려주셨다. 그런데 예배가 끝난 순간!!! 나는 아주아주 당황스럽게도 엉엉 울고 있었다. 왜인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뭔가 속에서부터 울컥 치솟아 오르더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옆에 계시던 수녀님도 잠깐 당황하시더니 아무런 말 없이 내 등을 쓰다듬어 주셨고, 예배가 끝나고 나가시던 분들도 조용히 내 등과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가셨다. 한 참을 울다 지하성당에서 나오자 신부님께서 입구에 계셨고, 나는 신부님과 수녀님께 갑자기 울어서 당황하시게 만들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신부님께서는 "왜 우는 게 미안한 일인가요, 사람은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어야 하는 거예요~ "라고 따뜻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 따뜻함 때문인지 성당에 들어설 때 답답했던 마음이 성당을 나올 때는 한결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이고... 주책바가지.. 거기서 왜울어~ 얼마나 창피한지.... 얼마나 당혹스러우셨을까??

성당을 다녀온 며칠 뒤, 대학교 때 나를 성당으로 데려갔던 그 친구와 15년 만에 연락이 닿았다.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수녀님이 되기 위해 수녀원으로 갔고, 시간이 지나면서 연락이 끊어졌었다. 성당을 다녀온 날 그 친구가 생각이 나서 대학교 때 쓰던 메일 주소로 답장을 기대하지 않고 메일을 써 내려갔다. 성당에 다녀온 사실과, 그 친구 생각이 많이 났다고... 그랬더니!!!! 정말 기적같이 그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 친구도 그 메일은 평상시 잘 사용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들어갔다가 내 메일을 보게 되었다고.... 지금은 수녀님으로써 인천에 있는 성당에서 사회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와... 정말 신은 계신가 보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그 성당을 방문해서 예배에도 참여했다. 그러다 점점 더 증세가 심해지고 휴직과 입원, 퇴원을 하면서 성당을 안 가게 되었다. 이렇게 불교신자의 성당방문기는 마무리되었다. 마지막으로 갔을 때 신부님과 수녀님께서 언제든지 와도 된다며, 예배를 참가 안 해도 대성당은 언제든 열려 있으니 마음이 편해진다면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가도 된다고 하셨다. 그 말씀의 따스함을 마음속에 새기며 조만간 성당을 방문해 볼 생각이다.

도쿄 한인성당.jfif 도쿄 메구로에 있는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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