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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어색한 아빠의 칭찬과 인정

나도 모르게 강박적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by 이하나

이전글들에서 적은 대로 나는 일본에 오기 전까지 학교진학, 전공, 스타일 등 내 모든 것들은 할매나 아빠가 정해준 범위 내에서 벗어난 적이 었었다. 대학도 수도권에 있는 학교에 진학이 가능하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도 아빠는 절대로 안된다고 하셨고, 부산에 있는 학교를 진학했었고, 취업도 아빠가 하라는 곳으로, 귀가시간은 9시..... 짧은 머리나 파마머리는 아빠가 싫어해서 늘 긴 생머리를 해야만 아빠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양쪽귀에 피어싱도 하고, 머리도 짧은 단발에 파마를 한 상태이다. 사실 머리는 일본으로 오기 직전 남자 같은 쇼트커트로 잘랐었고, 피어싱은 일본에 와서 하게 되었다. 예전부터 나를 아는 지인은 나를 "箱入り娘/하코이리무스메"라고 칭하기도 했었다. 일본어로의 의미는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해 세상을 모르고 귀하게 자란 딸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네이버에서 찾아보면 안방에서만 생활한 처녀라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처녀라고 의미가 나온다. 하지만 나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 착한 아이이자 착한 어른이 되어야 했다.


어릴 때부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빠에게서 칭찬을 받은 적이 었었다. 내가 잘하면 다 아빠가 잘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었고, 잘 해내지 못하면 누굴 닮아서 그러냐는 말이 되돌아왔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하려고 했었다. 어딜 가도 잘한다, 능력 있다는 말이 필요했다. 병원을 옮기고 검사를 하고 결과를 들었을 때 선생님께서는 강박적인 성향이 있고, 완벽주의적인 성향도 있다고 하셨다.


그렇다... 회사에서도 혼자서 다 해내지 못할 일을 누군가가 도와줘도 꼭 마지막은 내 눈으로 다시 한번 확인을 해야 했었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귀가한 그대로 어딘가에 앉은 적이 없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오면 우선 가방을 정리해서 도시락통, 물통, 손수건 등 사용했던 물건은 빼놓고 다음 날 들고 갈 손수건을 미리 넣어 놓는다. 그러고 나면 청소를 하고, 청소가 끝나면 반신욕을 한다. 반신욕이 끝나면 세탁을 한다. 그때가 되어서야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언젠가 한번 감기가 심하게 걸렸을 때 회사 선배가 집에 온 적이 있었다. 그 선배는 그 뒤로 회식을 할 때면 우리 집은 언제 가도 될 만큼 정리가 잘 되어 있다고 했었다.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내가 사는 집은 주택인지라 24시간 쓰레기를 낼 수 없어서 수거일 아침 8시 전까지 쓰레기를 내야 한다. 가연쓰레기(음식물쓰레기 포함)는 일주일에 두 번, 그 외에는 일주일에 한 번이나 이주에 한 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도 그냥 넘어간 적이 없었다. 한 번쯤은 건더 뛰고 다음에 버릴 수도, 퇴근 후 피곤하면 그냥 의자에 앉을 수도 있는데 난 그러질 못했다.


정작 나 자신을 피곤하게 만든 건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잘하고 있다는 칭찬이 받고 싶어서.... 그러던 내가 작년에 휴직기간 중 2주 동안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아빠와의 대화를 시작으로 요즘은 꽤나 자주 통화를 하기도 카톡을 하기도 한다. 얼마 전 나 자신이 너무 쓸모없이 느껴지고 너무 허무해서 처음으로 아빠에게 전화했을 때 처음으로 들었다. " 나는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니가 참 대단한 것 같다. 일본에 가서 집에 도움 한번 안 받고, 혼자서 공부하고, 취직하고, 거의 10년을 산다니.. 그거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 그 말에 얼마나 울었던지....


어제도 아빠와 통화하면서 " 아빠~ 내 지금까지 진짜 열심히 살았거든? 나쁜 짓도 한 적 없고, 다른 사람한테 안 좋은 말도 한 적 없다. 그런데.. 내는 왜 이렇노... "라고 거의 울면서 나도 모르게 요즘 내 마음을 아빠에게 말하고 있었다. 아빠는 잠시 말이 없더니 " 내는 안다.. 니 만큼 열심히 산 사람 없다고 내 말할 수 있다. 지금은 상황이 좀 안 좋아도 언젠가는 그게 다 돌아올 거다."라고 말했다. 작년 본가 방문 이후로 아빠는 자주 나에게 이야기해 준다. 잘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그 말들이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느낌... "마! 그래 힘들믄 고마 집에 온나! 니 하나 못 먹여 살리긋나! 집에 와서 다시 니가 해보고 싶은 거 생각해 보고 배우고 싶은 거 있으믄 배우고, 다시 해도 된다."라는 아빠의 말에... 할매가 없으면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는 생각했던 나에게 어쩌면 다시 돌아갈 곳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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