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되살아나는 악몽
어제 오랜만에 동생부부가 카톡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어느덧 5살이 된 조카 녀석이 고모가 보고 싶다고 했단다. 동생이 결혼할 때는 코로나가 한참일 때라 한국으로 가질 못했고, 그 뒤로도 본가에 가는 게 일 년에 손에 꼽힐 정도인 내가 꼬맹이 조카 녀석과 친해지게 된 건 작년 휴직중일 때 2주 동안 본가에 있었을 때였다. 내가 일본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조카 녀석은 본가에 가면 왕할머니(울 할머니) 방으로 쪼르르 가서 인사하고, 휙휙 내가 있는지를 살펴보고는 고모가 오늘도 없다고 한단다. 최근에는 아빠도 엄마도 아닌 고모가 제일 좋다고 한다는 우리 꼬마 녀석... 그 녀석이 태어나고 나서부터 아빠는 손자에 대한 짝사랑에 빠져있다.
어제 전화에서는 오늘 어버이날을 미리 당겨서 사돈어른과 우리 부모님을 모시고 대게를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아빠가 갑자기 안 가겠다고 했단다... 며칠 전 아빠와 통화할 때만 해도 기분이 괜찮아 보였는데, 그사이에 울 할머니랑 한바탕 하고,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는 또 속이 상해서 밥도 잘 안 먹고, 술만 마신단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치매인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를 정상인처럼 대하는 아빠의 사고방식이 대립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얘기를 듣자, 그럼 그렇지~ 아빠가 변하긴 뭘 변해...라는 생각을 했다. 요 근래에 아빠와의 관계가 조금은 가까워졌고, 아빠에 대한 이미지도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했었는데, 도돌이표가 되어버렸다. 과거의 아빠 모습이 다시 또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혼자서 그 상황을 겪고 있을 우리 할매가 걱정이 되었다. 할매는 작년에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나서 눈치를 보는 일이 많아졌다. 늘 당당하고 자기주장이 강했던 우리 할매가 말이다.. 그 이유는.. 혹시나 요양병원에 보내진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빠도 한 번씩 할매와 싸우게 되면 "자꾸 이래 말 안 들으면 같이 못 산다~ 요양병원 보낼 거다."라고 이야기했었다고 하니 진짜로 요양병원에 보내질까 걱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통화할 때도 내가 잘 지내냐고 하면 "아빠랑 엄마가 잘해주니 내는 잘 있지~"이러면서 옆을 힐끗힐끗 쳐다본다. 그런 할매의 모습도 떠오르면서 마음 한 구석이 묵직해진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일 뿐이고, 그때의 집안 사정으로 인해 아빠도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해보려 했다. 그런데 다시 그 공포와 걱정, 그리고 원망이 다시 되살아난다... 무엇보다도 할매를 한국에 두고 일본에 온 나를 또다시 야단친다. 너는 비겁하다고... 너를 키워주고 누구보다 사랑해 주는 할매를 버리고 니가 살자고 도망 온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