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연 Dec 06. 2020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를 읽고 나서(시간)

너무 많은 것에 의미부여 하지 말고, 조금은 덜어내도 되지 않을까


무라카미 하루키, 일인칭 단수, 문학동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이다. 하루키의 소설 중 마지막으로 읽었던 것은 「해변의 카프카」였고, 늘 그렇듯 하루키 소설은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기대심이랄까. 아, 적어도 책을 지불한 값이 아깝지는 않다ㅡ랄까. 하지만 노르웨이의 숲을 대출해서 읽었을 때, 책을 구입하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안심했었다. 사람들은 모두 좋아하지만 나에게는 가장 워스트였던 게 노르웨이의 숲이다. 어쨌든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순전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기 때문이었는데, 읽어본 결과 기대심을 충족했는가 ? 그 대답은 일단 뒤로 미루겠다.     


독후감


「일인칭 단수」 책 전체 맥락에 따르면, 선명한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진다. 그 의미는 흐릿해지고, 어쩌면 퇴색될 우려까지 있다. 사람은 과거의 기억을 원동력으로 삼아 삶을 지탱하거나 살아가기 마련인데, 그 과거의 기억과 그 의미는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그때 당시, 어쩌면 중요했을 지도, 혹은 결정적일 수도 있었던 기억마저 시간을 당해낼 수는 없다. 물론  그 기억들이 없더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 큰 무리는 없다. 그런대로 나는 나로서 실재할 것이다. 다만 그 기억이 한 칸에 자리하여 나를 구성했었기 때문에, 문득 혹은 가끔 기억이 떠올라 현재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일인칭 단수, 사육제, 문학동네


이제는 희미해져 정확도와 정밀성이 떨어지는 기억을 나도 가지고 있다. 과거 유럽 여행을 떠났던 시절, 외국인과 한국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그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여행을 완전히 망쳐버릴 수도 있었다. 사실 되게 좋은 여행은 아니었는데, 더 최악으로 떨어질 뻔 했다. 그때 그분들의 도움이 너무 감사해서 한국에 돌아온 후 한참 얘기했던 때도 있다. 내 블로그 어딘가에도 적어 놓았다. 하지만 지금, 그 시간들은 내게 아무 것도 아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분마저 든다. 한때 유의미했던 긍정적인 경험들은 그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분명 고마웠는데, 그게 확실한데, 시간 앞에서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닌데)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전락된다.     



사실, 「일인칭 단수」를 다 읽고 난 후에야, 그 유럽 여행의 기억이 생각났다. 소설 속 캐릭터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런 에피소드는 없어도 나로서 충분히 살 수 있다’에 동감하지만, 그건 분명히 현재의 시각에서 에피소드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 시점, 그 과거에서는 다른 의견이 도출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시간이 흘러 그 의미가 희미해지더라도, 언제까지나 현재의 시점에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때 당시는 의미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야’라는 게 아닌, ‘그때와 지금이 다를 뿐이야’라고 생각한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시점을 한낱 작은 것, 마치 배경 같은 것으로 주변부처리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 독립된 것들로 보고 싶다.     



사는 데 지장 없이, 살아간다. 별 거 없던 것처럼. 동의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 떠오르기도 한다. 요조는 ‘결국 모든 건 지나 간다’라는 말을 했다. 부정적인 경험도, 기이한 경험도, 긍정적인 경험도 결국은 지나 간다. 그리고 지나가면 지나간 대로 우리 몫으로 살아가야 한다. 너무 많은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너무 많은 것들로 인해 괴로워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조금 덜어낸 채 의미 부여를 줄이고 살아보는 건 어떨까.     


p.s 그래서 「일인칭 단수」는 기대감을 충족했는지 물어본다면, 책장을 덮고 나서 의식했거나 하지 못했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흥미로웠던 부분도 있었지만, 많이 덜어낸 소설이란 느낌이 들었다.

#무라카미하루키 #문학동네 #일인칭단수 #독후감 

매거진의 이전글 김성중 「에디 혹은 애슐리」를 읽고 나서(고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