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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an 01. 202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고 나서 (시간,사랑)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독후감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책의 내용

서른아홉 살의 폴은 5년 넘게 만나는 로제와의 관계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폴은 마음 기꺼이 내어주는 사랑을 더 이상 못 느끼지만, 자신이 로제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로제를 미워하면서도, 그를 쉽게 떨치지 못한다. 우연히 만난 시몽은 스물다섯 살의 젊은 남자인데 폴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하지만 그녀는 시몽의 충분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로제를 그리워한다.


폴은 왜 시몽을 부정할 수밖에 없을까.


독후감

폴은 로제와의 관계로 인한 행복을 더 이상 찾지 못한다. 사랑이 이미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녀가 혼자 있는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로제는 폴이 그 이상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력하지 않는다. 로제는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기울여서 폴과의 사랑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유효기간이 한참 지난 사랑이지만 폴은 놓지 못한다. 시몽은 사랑에 빠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맹목적인 노력으로 폴을 사랑한다.


타인의 시선, 외부 요인 등은 고려하지 않은 채 폴에게만 집중한다. 시몽은 자신보다 폴을 더 걱정하고 보살핀다. 그건 한 사람의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종류의 애정과 행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폴은 시몽의 사랑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그녀는 시몽을 사랑하면서도 사랑을 부정한다. 행복한 순간에 스스로 제동을 걸어버린다. 그녀는 결국 시몽과 이별을 한다.



시몽은 다른 것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폴을 사랑한다.

삶은 여성지 같은 것도 아니고 낡은 경험 더미도 아니야. 당신은 나보다 열네 해를 더 살았지만, 나는 현재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거야. 그뿐이야. 나는 당신이 자신을 천박한 수준, 이를테면 그 심술쟁이 할망구들의 수준으로 비하시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지금 우리의 문제는 로제뿐이야. 다른 건 문제 되지 않아.
p.40


서른아홉 살의 여자와 스물다섯 살의 남자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본다. 소설이 아니라 현실로 이미 존재한다. 흔하지 않지만, 실재한다. 이로 인해 폴이 시몽과 있는 순간, 행복하지만 걱정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것을 제쳐두고, 시몽과의 사랑에만 집중하는 것은 위험한 것처럼 느끼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결말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폴의 동요하는 마음을 이해한다.


사랑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른 후, 시몽은 더 이상 폴을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스물다섯 살 남자가 가질 수 있는 특유의 패기와 무조건적인 사랑이 현재에만 당도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 아닌 미래의 순간에는 사랑이 끝나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알 수 없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현재의 확실한 사랑을 버리는 것은 인간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선택 중 하나이다.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무엇이 확실하고 무엇이 불확실한 것인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아름답고 소중하게 만들어 온 사랑마저도, 그 자체만으로 확실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그건 시몽이 젊은 남자여서가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시간 앞에서 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5년을 넘는 시간 동안 폴과 시몽이 만났더라도, 앞으로 5년 후를 또다시 약속할 수는 없다. 5년 전 그때, 시몽을 만나 사랑할 거라고, 로제가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날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현재 시점의 사랑은 현재에만 보장할 수 있다. 그 어떤 사랑도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 그건 시간이 흘러야만 증명될 수 있다. 알 수 없어서 불안한 마음은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사랑 앞에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의연하게 직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감정이 정말 ‘사랑’이라면 말이다.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소중하다.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을 약속할 수 없고, 약속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영원하지 않다고 해서 지금 느끼는 감정, 관계, 사랑이 무의미하거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영원을 약속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만 누릴 수 있는 감정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너를 원하고,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망설임 없이 반응해야 한다. 변할 수 있다, 아니 변한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100으로 느낄 감정을 70으로만 느끼는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을 누리는 그 순간 행복을 누려야 하고, 사랑할 수 있는 순간에 사랑을 누려야 한다. 영원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1959년에 출간된 소설이다. 작품 속 인물이 느끼는 감정과 갈등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공감을 사는 부분이다. 고전은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준다고 하던데, 이 작품을 읽고 나서 그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나이가 들어 다시 읽을 때 느낌이 많이 다를 거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유려하고 감각적인 문체로 인물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가을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느꼈다. 쓸쓸하지만 공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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