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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렸더니 진주가 되었다.

진주가 귀한 이유는 오랜 시련을 견디고 고독한 아픔을 참았기 때문이다.

by 은연주



진주는 인어가 흘린 눈물이라는 말이 있다. 바다의 눈물이라는 뜻이 비단 하루이틀 만에 만들어진 말은 아닌 것 같다.


시어머니는 결혼 전에 어머니께서 자신의 예물이었던 다이아몬드를 귀걸이로 리세팅해서 내게 물려주셨다. 그러면서 한 말씀을 덧붙이셨다.


“진주는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선물해 주는 게 아니래. 진주가 눈물을 뜻하나 봐. 시집살이시키지 않겠다는 의미겠지 아마?”


어머니는 진주 대신 당신 시어머니께 선물 받은 커다란 화이트 오팔 반지를 같이 주셨다. 옛날 디자인이라 투박하지만 그래도 뜻깊은 거니깐 잘 간직하다가 나중에 디자인만 바꾸라고 하셨다.


실제로 나의 시어머니는 시집살이와 거리가 먼 정말 좋은 분이셨다. 어머니 당신께서 시집살이에 시누 시집살이까지 많이 하셔서 더욱 그러셨다. 항상 너를 제일 먼저 생각하라고, 길동이한테 잘해주는 건 고맙지만 나중에 살다 보면 참을 일 있을 때 절대 참지 말라고 하셨다. 참으면 너만 병난다고. 내 아들 부족하니깐 속상하게 하면 참는 대신 꼭 화내고 가르치라고. 결혼이 코앞이었을 때는 이제 반품 없으니 네가 잘 고쳐서 살라고 농담도 하셨다.




진주는 어쩌다가 눈물을 의미하게 됐을까. 바다가 슬픔에 잠길 때 탄생하는 보석이라는 말이 어쩐지 구슬프게 들렸다. 어느 날 조개 속으로 날카로운 모래 알갱이가 들어와 박혔다. 조개는 안간힘을 다해 뱉어내려고 애썼지만 오히려 모래 알갱이는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든다. 모래 알갱이가 속살의 내장을 찢을 때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모래 알갱이를 뱉어내려고 온갖 노력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조개는 자신의 상처를 받아들인다. 비로소 자기에게 상처를 낸 모래 알갱이를 용서할 때쯤에 드디어 조개가 뿜어내는 분비물이 조금씩 모래 알갱이를 감싼다. 그것들이 켜켜이 쌓이고 3년 정도가 지나면 마침내 진주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진주는 슬픔이 뭔지 아는 성숙한 보석이구나.




시부모님은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인연이다. 남편을 떠올리면 이제 정말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지만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아직 여러 감정이 올라온다. 나는 시아버지보다 시어머니에게 특히 마음이 쓰였다. 딸이 없어서 생전 어디 터놓고 말할 곳이 없으셨겠지. 남편과 비슷한 시아버지랑 사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아버지의 아버지는 다행히도 시아버지 자신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시아버지는 남편과 비슷한 성향이지만 인지가 뒤틀리거나 성품이 모나지 않으셨다. 내 눈에는 아버지와 자식, 똑같은 세계 두 개가 충돌해서 자식의 세계가 어그러지고 깨진 걸로 보인다. 그러면 내겐 가해자인 남편의 정신세계가 꽤 납득되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사건이 터진 후에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같은 프로그램을 보시면서 자주 우셨다. 내 아들이 무뚝뚝하고 가끔씩 이기적이긴 해도 속은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셨다. 자폐 스펙트럼이나 우울증 같은 걸 어릴 때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손썼을 거라며 자책하셨다. 나는 그런 시어머니가 안쓰럽기도 했고 이해되기도 해서 가끔은 내가 해야 할 말을 속으로 삼켰다.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마음보다 시어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이 먼저였다.


남편이 남몰래 숨겨왔던 자격지심은 화목한 가정이었을까. 결혼 전부터 우리 가족 사이에 계속 끼고 싶어 했다. 순둥순둥한 내 동생을 자기 동생보다 더 좋아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자기를 예뻐해 주는 게 좋은지 나보다 더 자주 우리 집에 가고 싶어 했다. 나는 그런 남편이 귀엽고 고마웠다.


딸이 없는 시댁에서 내가 딸 노릇을 하면 되겠다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가족에게 잘하면서 살아갈 줄 알았다. 그래서 일이 이 지경이 된 뒤에 내 불행을 그의 부모 탓을 하며 섣불리 원망하기 힘들었다. 내 불행 이전에 오랫동안 이어져왔던 남편 가족의 불행이 먼저였다. 그래서 일단 참았다. 하지만 시어머니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면서 속으로 삼킨 눈물이 결국 나를 썩게 만들었다.




하도 눈물을 삼켰더니 너덜너덜하게 축축해진 마음이라서 더 이상 새 마음으로 갈아 끼울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눈물을 삼키는 대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당연히 신혼 이혼을 앞두고 고민하는 사람들이나 아직 아물지 않은 이혼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이 글을 읽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 많은 독자들의 연락을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내 글을 제일 많이 읽어주시는 분들은 자폐 스펙트럼을 포함한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었다. 그리고 내 남편과 비슷한 남편을 만나서 마음 고생하다가 심리 상담 공부까지 하신 상담 선생님들이었다.


우리 엄마랑 시어머니보다 나이가 많으신 어떤 선생님은 40년이 넘는 결혼 생활에서 남편을 이해해 보고자 정신 분석에 가족 상담 심리 공부까지 하셨다고 했다. 그분은 유럽 여행 중에 우연히 읽은 내 글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셨다. 지나간 세월이 아까워서 울고 또 울고, 평생의 숙제가 드디어 해결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하셨다. 내가 만약 이 결혼에 성공해서 브런치에 글 쓸 일이 없었다면 선생님의 인생은 끝까지 동굴이었을 거라고, 심리 상담 공부했던 거보다 정작 도움이 된 건 내 브런치였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순간 어두웠던 내 마음에 빛이 가득 차는 것 같았다.




내가 그동안 흘린 눈물들이 조용히 진주가 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다른 이의 눈물을 이해하고 손수건을 건네주기 위해 내가 먼저 이 눈물을 흘린 걸까. 눈물로 쓴 글이 진주가 되어 누군가의 목에 걸려서 가슴을 반짝여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머지않아 '남편 때문에'가 아니라 '남편 덕분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슬프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다. 진심으로 잠을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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