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외로움. 근데 외로운 것도 괜찮은 것 같아.
요즘 젊은이들은 여름만 되면 양양으로 향한다고 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춘들이 서핑(을 빙자한) 음주가무를 즐긴다고.
양양을 제집 드나들듯 여러 번 왔지만 단 한 번도 성수기에 와본 적 없다. 우리는 시끄럽고 사람 많은 곳을 질색했다. 남편은 명동에 가면 공황이 올 정도로 혼이 나갈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사람 많은 곳은 기 빨려서 싫었다.
강아지와 함께 출입 가능한 밥집, 카페를 찾는데 대부분 평일은 휴무 혹은 비수기라서 아예 영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양양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활발할 줄 알았지만 비수기 평일 여행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파도는 내가 바라던 만큼 컸다. 집채만 한 파도가 성난 듯이 날뛰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니 속 시끄럽던 내 마음은 오히려 잔잔해졌다. 마음속 껄끄러운 모든 감정들을 저 파도에 투사해 버리자. 남편이 자신의 잘못을 온통 내게 투사하고 있는 마음도 이런 거겠지. 화가 난 파도를 바라보며 내 마음은 잔잔해져서 좋다고 말하기 무색할 만큼 남편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게 우리는 양양에 스무 번도 넘게 같이 왔다. 모든 장소가 그의 단골집이고 비장의 무기 같은 숨은 맛집이었다.
한 순간에 사연 있는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비수기 평일, 썰렁할 정도로 텅 빈 양양. 뒤늦게 기상청 예보를 보고 나서야 아까 그 집채만 한 파도가 3미터 넘는 높이라는 걸 알았다. 매서운 파도, 아무도 없는 백사장에 위태롭게 앉아있는 어떤 여자와 처음 와본 바다가 신기해서 촐싹거리며 뛰어다니는 강아지.
사건이 터진 뒤에 아직 한 번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었다. 정확히는 외로움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현실 파악을 하지 못한 채 반년을 허송세월했고, 그 뒤엔 우울에 허덕였다. 분노와 쓸모없는 미련, 해탈과 자아성찰, 자기 연민, 슬픔과 공허함과 무력함. 그래도 이 길 끝에 마침내 더 성숙한 내가 기다리고 있을 거란 인내와 희망.
모든 감정을 관통하면서도 어쩐지 외로움은 나를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외로움이 나를 찾아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편과 늘 함께 오던 양양에 혼자가 되어 다시 오고 나서야 처음으로 고독이 뭔지 알았다. 혼자라는 건 아주 쓸쓸한 형벌이다. 다행히 남편 생각보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강원도는 아직 봄의 탈을 쓴 겨울이다. 이 외로움도 그저 한낱 껍데기일 뿐이겠지. 성숙을 위해 느껴야 하는 외로움이라면 백 번도 더 외롭고 열심히 고독해야겠다는 이상한 결심이 들었다. 모든 감정을 기꺼이 받아들일 테니 차라리 얼른 오면 좋겠다. 양양은 쓸쓸하고 나는 외로운데 왠지 어제보다 조금 더 강해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