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늘은 유난히 그때의 남편이 그리운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나조차도 내 감정 변하는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기분이나 감정은 외부 자극을 뇌에서 해석하는 행위라는 뇌 과학자의 설명을 본 적이 있다.
우울증 환자인 나는 당연히 뇌의 이 부분이 고장 났으니 항우울제를 먹는 거겠지만, 이 낯선 기분은 아무리 약을 먹어도 명상을 해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아서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내가 느끼는 이 기분이 진짜 내 것이 맞는지, 자꾸만 내 감정에 확신이 없어진다. 난 원래 내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남편에 대한 감상이 번복된다. 아무래도 단단히 고장 난 것 같아서 뇌를 포맷해버리고 싶다. 남편과 함께 한 시간이 길었던 만큼, 추억이 저절로 떠오르면 보고 싶고 그립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가 어느새 분노와 적개심을 다스리지 못하는 미친년처럼 화가 난다.
아침에는 괴로워하며 눈을 뜨고, 점심에는 남편을 저주하고 욕하다가 저녁에는 다시 출구 없는 슬픔에 젖어 몇 시간이고 계속 오열을 한다. 왜 우는지 뭐가 슬픈 건지 나도 나를 모르겠다. 확실히 알겠는 건 살면서 내 뇌가 완벽하게 망가졌다는 것, 이런 적이 처음이라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선생님들은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그럴만하다고, 지금은 그럴 때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확인을 받고 싶은 게 아니다. 공감받고 싶은 게 아니다.
너무 잦은 기분 변화가 무섭다고, 안정적이었던 내 모습을 영원히 잃어버릴까 봐 두렵다고, 이 공포감을 어떻게 다스릴지 알고 싶다고. 허공에 대고 소리쳐도 바뀌는 건 없다.
나는 문과 중에 문과, 엄청난 기계치이자 컴맹이다. 인터넷을 하다가 멈춰버리면 컴퓨터 본체를 탕탕! 몇 번 때려보다가 결국 무식하게 전원 버튼을 꾹 누르는 사람이다. 내 뇌가 컴퓨터라면 그냥 플러그를 뽑아버리고 싶다. 이터널선샤인은 2004년에 나온 영화인데 왜 20년이 다 되어 가도록 뇌과학 기술은 진보하지 않았는가. 여기 기억을 지우고 싶은 사람 있어요. 제 뇌 통째로 가져가서 실험해 주세요.
작년 겨울에 남편과 같이 걸어 다녔던 골목을 다시 걷게 되었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그때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날씨는 어땠는지, 여길 지나서 어디로 갔는지 동선까지 나는 아직도 모든 게 생생한데.
아 그러셨구나, 그때 어떤 기분이 들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상담 선생님이 묻듯이 내가 나에게 스스로 물어봤다.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제가 이 길을 걸으면서 어떤 기분을 느낀 건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답답해 미치겠어요. 제가 지금 슬픈 건지 화가 나는 건지 아니면 그리운지 허무한지 아픈지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뽑기 운 꽝인가 봐요. 남편 말고 제 뇌요.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돼요?
입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면 뭐라도 특별한 요법이 있지 않을까. 하다못해 시간이라도 축내다 나오지 않을까. 어차피 시간이 약인데. 회삿돈 몇 천억 꿀꺽 횡령한 다음 눈 딱 감고 감옥에서 몇 년만 살다 오자, 그 다음에 새 인생 새 출발하자, 이런 마인드의 범죄자들도 시간 죽이는 스킬이 대단한데.
나는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남의 눈에서 피눈물 뽑아낸 것도 아닌데 병원에도 못 가, 감옥에도 못 가, 도망갈 곳 하나 없이 그냥 고장 난 뇌 하나 붙들고,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서 울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