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당당하고 솔직한 게 여전히 내 매력이라!
1.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어제 글에 K장녀로서의 복합적인 감정에 대해 털어놓았듯이, 나는 언니가 있는 게 소원이었다. 그리고 이 친구는 실제로 나보다 2살 언니라서, 내게 만약 진짜 이런 언니가 있었다면~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사람이다.
단지 나이가 언니라서가 아니라 평소에는 스스럼없는 친구이면서 때로는 연인처럼 느껴질 만큼 매력 있고 따뜻한 성격의 소유자.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가장 미적 감각이 빼어나고, 뛰어난 센스만큼 주변을 배려하는 마음씨는 천사에 가깝다. 게다가 우리는 결혼 준비 기간도 꽤나 엇비슷해서 서로 많은 정보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예비 신랑들보다 더 자주 연락하기도 했다.
언니는 나의 기막힌 사연을 다 알고 있고, 누구보다도 나를 걱정해주고 있다. 내가 언제든지 힘들고 못난 모습을 보여도 기꺼이 나를 받아주고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 그런 언니가 나와 소수의 친구 몇 명을 자신의 신혼집에 초대했다. 안 그래도 도망치다시피 사회와 연을 끊은 나라서 유일무이한 연말 모임이 너무 기대됐다. 집들이는 언제나 즐겁다. 그 사람의 취향과 생각이 가득 담겨있는 공간에 놀러 간다는 것은 마치 미지의 세계로 초대받는 것 같아서 낯선 나라로 여행 갈 때처럼 설레는 일이다.
언니네 집에 도착했을 때 귀여운 앞치마를 두른 언니는 우리를 위해 열심히 요리를 하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그 모습이 마치 영화 줄리앤줄리아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아 보였다. 언니의 집은 정말 아름다웠고, 그 이유는 그 집과 꼭 닮은 사람이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내가 다시 혼자가 될 공간에 대해 잠깐 떠올려봤다. 온기라곤 전혀 없는, 써보지도 않은 혼수들이 박스째로 쌓여있는 창고 같은 곳. 다시 가구를 들이고 살림살이를 채워나가도 언제나 허전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같이 초대된 다른 친구들은 원래 언니의 친구라서 내 사생활에 대해 당연히 몰랐다. 어차피 나는 내 주변에 이런 상황에 대해 밝히는 대신 사회로부터 도망치는 선택을 했으니깐.
언니의 친구들은 내가 외국으로 시집간 줄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게 언제까지 한국에 있는 거냐고 물었다. 그곳 생활이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별로라고, 난 한국에서 사는 게 최고인 것 같다고 답했다. 그리고 사실 이미 이직한 사실을 전하며, 아마 당분간 롱디 부부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즉석에서 둘러댄 말치고는 내가 생각해도 제법 그럴 싸했다. 그들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우선 내 이직 소식을 축하해 줬다. 한 술 더 떠서 결혼했어도 연애하듯 떨어져 살면서 롱디로 더 애틋할 것 같다고, 아무튼 너무 잘 됐다고 했다. 마음이 무진장 쓰렸다. 거짓말을 해서. 그리고 이 거짓말을 언니가 지켜보고 있어서. 물론 언니는 요리를 하느라 바빠서 못 들었거나 아무 생각이 없었거나 그러려니 했을 거다.
모두를 속이는 거라면 차라리 쉬웠을 텐데, 나의 모든 걸 알고 걱정해 주는 친구와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 그 사이에서 위선자가 되어버린 것 같은 나.
파티는 정말 즐거웠고, 실컷 떠들고 마시고 오랜만에 모든 걸 내려놓고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는 나도 모르게 또 울어버렸다.
2. 남편한테는 남동생이 있다. 아직은 우리가 이혼을 안 했으니 나에게는 시동생. 나는 여전히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다. 남편의 동생은 섬세하고 사려 깊으면서도 그만큼 냉정하고 현실적인 사람이다. 물론 아직 직접적으로 친해질 기회가 없었으니, 내가 보고 겪은 거라기보다는 그동안 남편이나 시부모님께 들어온 이미지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 그런 설명을 들었을 때, 모두에게 친절하고 매너가 좋지만 쉽게 자기를 오픈하거나 곁을 내어주지는 않는 서양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시동생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나와 남편의 사건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시부모님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시동생은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형수님 개인 인생을 생각해서라도 이혼이 답이야. 형수님의 행복도 중요해.
-엄마도 형수도 둘 다 서로를 위해서 더 이상 가깝게 지내지 않는 게 좋아. 어차피 이혼하면 남이 돼야 하는 사이인데 계속 이렇게 지내면 안 그래도 이미 많이 정들었는데 나중에 더 힘들어져.
-왜 형은 제일 소중하게 대해야 할 사람들(나를 비롯한 남편의 원가족)에게는 함부로 대하고, 밖에 나가서 인스턴트 관계들한테는 배려하는 척해? 그건 진짜 잘못된 거야.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다. 시동생의 어른스러움, 침착함, 현명함 등에 감탄을 했다. 제아무리 내가 당사자고 최대 피해자라고 한들, 이렇게 순식간에 망가져버린 나 자신이 싫었다.
시동생은 연애를 하고 있는데,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 하나 없고, 시어머니께서 그런 얘기를 하신 것도 아니지만 내가 상황상 적당히 눈치껏 알아들었다. 그러면서 나와 남편이 결혼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을 무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우리도 저랬는데, 그러다가 프러포즈받고 결혼식장 보러 다녔는데, 그때 이랬고 저 때 저랬는데…’
그때부터 시작된 자기 연민. 자기 연민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찌질한 감정이다. 개인의 발전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주체적인 한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도태적 자살 행위. 그래서 나는 항상 자기 연민 대신 자아성찰을 더 가까이하려고 노력했다.
남편도 홧김에든 미쳐서든 뭐가 됐든 이혼을 요구한 뒤에, 만약 자아성찰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우리는 아마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 영혼도 이만큼 피폐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자아성찰 대신 자기 연민을 선택했고, 지금도 본인 인생이 안쓰럽고 힘든지 매일 술만 마신다고 한다.
그런 찌질한 자기 연민이라는 감정이 내게 성큼 다가왔다는 걸 깨닫고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 순간에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시동생의 여자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결혼 준비도 신나겠지, 신혼생활은 얼마나 행복할까. 종종 나와 그녀의 신세를 비교하며 한탄하기도 했다. 각자 한 집안 형제를 좋아해서 연애한 건 똑같은데, 나만 이렇게 매일 찌질해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내 찌질함을 숨기고 싶지 않다. 이 초라한 모습을 고스란히 다 까발려야 나를 향해 달려오는 자기 연민을 더 멀리 쫓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자주 초라하고 찌질하다. 그렇지만 당당하고 솔직한 게 원래 내 매력이라서 나는 아무리 애써도 자기 연민에 빠질 수 없을 것 같긴 하다.
초라하고 찌질하고 종종 자기혐오에 빠지는 최근의 나라도 내가 많이 사랑해 줘야지.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나에게 당당하기 위해서 오늘의 초라함에 대해 고백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