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을 옮기면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잘못은 없는데.
며칠간의 비가 폭설로 바뀐 오늘, 시댁 창고에 쌓여있던 내 이삿짐 박스들을 시어머니와 둘이서 옮겼다.
내가 남편이 살던 나라로 보냈던 이삿짐 중 일부였다. 남편은 지난가을 잠깐 한국에 들어왔을 때 굳이 그 짐들을 직접 이고 지고 들고 왔다고 시어머니께 들었다.
그리고 커다란 캐리어 가득 채워 들고 온 내 짐을 다시 새 박스에 차곡차곡 옮겨 담은 뒤 본인 부모님 집 창고에 놓고 다시 출국했다고.
도대체 그의 행동의 기저에 깔려있는 심리는 뭘까 진심으로 궁금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짐을 스스로 들고 오는 자신이 여전히 나를 위해 최대한 배려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려나?
나와 남편은 현재 서로 아예 연락을 안 하고 있다. 지난달 말쯤, 남편은 자기 부모님께 이제 서로 물고 뜯는 소송밖에 안 남았으니 나와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말라고 협박조로 말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 아빠에게는 따로 연락해서 소송은 매우 길고 힘든 과정이니 서로를 위해 협의이혼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래놓고 정작 다음 날 남편은 소장을 접수했고 졸지에 나는 피고인이 되었다. 그의 행동들이 도저히 이해 가지 않고 상식 밖이라서 나는 이제 남편이 무섭기도 하고 그의 뇌 구조가 궁금해질 정도였다.
종종 생각날 때마다 법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대체 그의 이혼 소장은 언제 송달되는지 찾아봤다. 인터넷에선 소장 접수하면 1-2주 이내로 무조건 피고에게 송달된다던데 남편의 이혼 소장은 3주가 다 되도록 함흥차사였다.
그러더니 결국 새로운 업데이트가 떴다. 참여관용 보정명령이 떨어져서 원고에게 전달됐다고.
이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검색해 봤다. 소장 내용이 부족하거나 서류 누락 등으로 보완하라는 뜻이라고.
근데 여기서 하나 더 의구심이 생겼다. 남편은 본인 부모님께 변호사를 고용했다고 말했다. 예전부터 누누이 변호사와 상담을 했다며 도움 받는 변호사가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면 참여관용 보정명령은 원고가 아니라 원고 대리인에게 전달됐어야만 한다. 그가 왜 여기저기 혼란을 주고 교묘하게 상황을 조작하거나 조종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이혼을 주장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네가 나를 속이고 우리 엄마 심부름을 했기 때문에 나는 너에 대한 신뢰가 깨져서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다. 네가 유책 배우자며 나는 피해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외에도 갖가지 이유가 더 붙었다. 남편이 정말 이혼이 너무 하고 싶다면, 덕분에 하루아침에 똥 밟고 결혼 2주 만에 이혼녀 딱지를 달게 되는 내게 위자료를 주고 이혼을 요구하면 된다.
시부모님은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들에게 정말 이혼을 하고 싶다면, 걔한테 정당하게 피해보상을 해주고 이혼하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남편은 당연히 펄쩍 뛰며 내게 1원 한 푼 못 주노라 분노했다고 한다.
잠깐만. 분노할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인데? 아니 난 분노로 화병 나기도 전에 너무 충격받아서 정신병부터 왔는데? 내가 직접적으로 정확한 액수를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네가 먼저 펄쩍 뛰면서 한 푼도 못 준다고 열을 냈다고?
나나 우리 부모님은 아직도 시부모님이나 남편에게 피해보상을 먼저 요구한 적이 없다. 그 정도로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큰 충격을 받았고 일생일대의 비극을 겪고 있는 중이다. 엄마, 아빠는 반년만에 폭삭 늙어버렸다. 나 때문에. 정말이지 나 때문인 것만 같았다. 내가 남편만 안 만났더라면 우리 엄마, 아빠가 이런 일을 겪을 일도 없었을 테니깐.
만약 길 가던 행인이 아무에게나 칼을 마구잡이로 휘둘러서 누군가 죽었다면, 피해자의 가족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어이없는 그 죽음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충격과 슬픔에 휩싸여 현실을 부정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네 골목길에서 경미한 접촉사고가 났을 때 앞차에서 갑자기 뒷목 잡고 내리더니 단체로 교통사고 전문 한방병원에 입원한다면? 나와 우리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은 둘 중에 뭐가 더 가까울지 굳이 정답을 달아놓지 않아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겠지.
우리 집은 나의 결혼이 개혼이라서 정말 온 친척들에게도 큰 축제였고 기쁜 소식이었다. 특히 내 결혼을 간절히 기다렸던 엄마는 소회가 남달랐다. 우리는 어차피 외국에서 살아야 했고, 남의 나라에서 렌트살이 하느라 별다른 혼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래도 꼭 좋은 이불 한 채 해주고 싶었다며 비싼 구스이불에 목화솜 침대패드에 종류별로 마련해 주셨다.
또 내가 대학생이었던 한참 옛날에, 엄마가 어떤 기회로 마련해 놨던 귀한 예물 그릇 세트며 은수저까지 곱게 포장해서 줬다. 실크 보자기에 싸여있던 그것들은 엄마가 간직하던 노리개까지 달려있어서 리본을 풀러 보기도 전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그동안 엄마가 언제 그런 예술 작품 같은 그릇들을 사놓았는지, 은수저는 또 언제 준비한 건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내가 영원히 시집을 안 갈 수도 있는 건데,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딸의 결혼식날을 상상하며 하나씩 준비했을 과거의 엄마 마음을 떠올리니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이삿짐을 옮기면서 엄마가 사줬던 그 이불을 다시 마주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이불을 보자마자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또 자연스럽게 결혼식을 앞두고 시어머니께서 내게 물려주신 목함까지 같이 떠올라서 결국 꾹꾹 참았던 눈물은 이미 볼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연로하신 시어머니와 둘이서 이 많은 이삿짐을 직접 옮기고 있는 상황도 너무 기가 막힌데, 여기서 내가 눈물 흘리고 있는 게 티 나면 시어머니 마음은 더 찢어지고 혹시라도 모종의 죄책감까지 느끼실까 봐 일부러 눈물을 숨기려고 박스의 아랫부분을 받치는 척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지 않아서인지 괜히 볼이 따갑게 느껴졌다.
시어머니가 시집오실 때 시어머니의 시어머니께 받은 아주 오래된 나무 상자 안에는 어머니가 혼수로 받으셨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귀걸이로 리세팅되어 들어있었다. 시어머니는 나중에 아들이 결혼하면 며느리에게 물려주려고 그 긴 세월 동안, 여러 번의 이사를 거치는 동안에도 항상 소중히 보관해 오셨다고.
그리고 나중에 내가 혹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에게 물려주라고 말씀해 주셨다. 목함과 그 안에 들어있는 소중한 유산을 직접 보신 우리 부모님은 시어머니의 정성이며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온전히 다 느끼셨다. 원래도 눈물이 많은 엄마는 얼른 소매로 눈물을 훔쳤고, 아빠는 당시 함이 포장되었던 보자기까지 곱게 보관하신 어머니의 세심함에 감탄했었다.
내 남편은 우리 엄마가 시집보내는 딸을 생각하며 챙겨줬던 혼수의 의미가 뭔지 떠올려 본 적이 있을까. 그리고 자기 엄마가 평생을 보관해 오신 그 목함에 내포된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남편이 이혼 소장에 이혼 사유를 뭐라고 적었는지는 모른다. 그 소장은 아직 내게 송달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이혼 조정 신청서에 적었던 사유 중 하나는 '본인은 예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였다.
남편은 아마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부모의 사랑이 뭔지, 사람들이 왜 결혼은 둘만의 일이 아니라 가족의 일이라고도 말하는지, 자식을 결혼시키는 부모의 마음이 뭔지 영원히 진심으로 모를 테니깐.
써보지도 못한 엄마의 혼수, 부푼 마음으로 하나씩 준비한 신혼 그릇이며 소품들이 도로 내게 돌아왔다. 별 다른 반송 이유도 없이. 이삿짐을 우선 방 한편에 쌓아뒀다. 영영 그 짐들을 다 풀지도 못할 것 같다. 그렇게 그대로 방문을 걸어 잠가버리고 싶다. 내 마음이 굳게 닫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