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알 수 없는 인생 앞에서 배우는 겸손
남편 홍길동처럼 숫자, 명확한 증거나 근거, 데이터만 믿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었다. 시를 읽고 마음 한편에는 나무나 풀 한 포기에도 선한 마음이 있다고 믿고 싶어 했지만, 사회에서 어느 정도 사람 구실을 흉내 내며 살다 보니 나도 내심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잘 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면서 사실 속마음은 '에이 말이 돼?' 하는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결혼 전에 궁합을 봤을 때 시댁에서 본 건 우리가 결혼하면 내가 죽는다고 나왔다. 내가 봤던 건 겉으로는 잘 맞지만 아이를 빨리 가져야 오래 같이 살 수 있다고, 남자가 예순쯤 되면 혼자 살겠다고 집을 나갈 수도 있다고. (이제 보니 시댁에서 봤던 역술가가 아주 용했다. 정말 나를 죽여놨네.)
작년, 사건이 터지고 나서 정신이 나가있을 때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현실 파악이 되지 않아 10만 원이나 내고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간판도 없고 20년째 단골만 상대하는 곳이었다. 내 생시를 듣고 아저씨의 첫마디는 "올해 결혼운이 강하게 있네? 결혼 소식 없나? 만나는 사람 있으면 올해 결혼하면 아주 좋고, 사람 없으면 올해 만나는 사람이 인연이야."였다. 용하네. 그럼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도 혹시 사주에 쓰여있을까.
- 아 저 결혼했어요..
- 그래? 언제 했어요? 남편 생시 줘봐요.
- 올해 했어요.. 8xxxxx 양력이고 xx시 xx분이요.
- 것봐, 올해 결혼운이라고 딱 쓰여있다니까요. 어디 보자.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안경을 고쳐 썼다.
- 아가씨 결혼 전에 궁합 안 봤어요?
- 아뇨 봤어요.
- 그래 뭐라고 했어요? 궁합 본 데서.
- 뭐 죽는다는 얘기도 들었고, 그건 안 믿었고요. 그리고 제 사주에 자식궁이 좋다고 빨리 애 가지면 더 잘 산다고 들었고요. 옛날부터 제 사주는 애 잘 키우는 그런 사주랬어요.
- 그런 말은 다 엉터리로 설명해 준거고. 사주는 타고난 성격, 기운을 보는 거예요. 근데 사주에 드러나는 겉성격이 있고 속성격이 있어요. 이걸 잘 해석하는 데서 봐야 돼. 근데 아가씨 남편 속성격은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야. 요즘 세상에 결혼하면 안 되는 사주야. 누구랑 결혼해도 상대방 피 말려 죽여. 나한테 결혼 전에 왔으면 난 솔직히 이 결혼은 반대했을 거야. 살다 보면 남편이 앞뒤가 다를 거야. 겉성격은 아주 예의 바르고 속 깊어 보이고 믿음직스럽고. 아주 커다란 나무거든. 근데 속은 달라요. 그게 본성이고. 이미 결혼했으니 별 수 있나. 아가씨 사주에 자식운이 좋으니깐 애만 보고 살아야지 뭐.
기가 막히지만 내 상황을 꿰뚫어 본 것 같았다.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상황 설명도 없이 혹시 나한테 올해 이혼수가 있냐고, 아니면 남편한테 이혼수가 들어왔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뒤에 간단히 설명했다. 사실은 남편이 별 것도 아닌 일로 화가 나서 이혼을 하자고 한다고. 대화를 아예 봉쇄하고 한순간에 딴 사람이 되었다고. 그 일은 내가 시어머니의 심부름을 한 건데, 자기가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했으니 배신한 거라고 발작버튼이 눌렸다고. 아저씨는 한숨을 쉬었다.
- 아가씨 올해 결혼운만 있고 이혼수 같은 건 없어요. 남편도 이혼수는 없고. 아가씨 사주에 이혼수가 한 번 있는데 50대 이후에 들어오고, 남편은 예순쯤 자기 멋대로 살겠다고 집 나갈 수가 있어. 그러니깐 타이밍상 그때쯤 이혼하는 게 그림은 더 맞아요. 근데 인생이 다 사주대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아가씨 그런 남자랑 왜 살아요? 사주에 이혼수 쓰여있어야 이혼하는 거겠어요? 같이 못 살 성격의 남자인 거예요. 내가 평생 사주만 봐온 사람이지만, 부모 나이뻘인 사람으로서 조언할게요. 이혼수랑 상관없이 이혼하세요. 같이 살면 아가씨 인생만 고달파져. 내년부터 대운 바뀌니깐 새 흐름에 맞게 이 남자 빨리 정리하는 생각만 해요.
- 이혼수랑 아무 상관없으니깐 사주에 이혼수 없다고 괜히 헛된 기대 말고. 아가씨가 이 남자랑 살려면 아가씨 잘못 아니어도 무조건 무릎 꿇고 싹싹 빌어야 살 수 있어요. 지금도 아가씨가 그렇게 안 해서 더 화가 났을 거야 아마. 근데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나? 사주는 성격이지, 결혼운 있다고 다 결혼하고 이혼수 있다고 다 이혼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건 그냥 흐름, 바람인 거지. 중요한 건 사주는 성격인 거고. 자 오늘 이거 상담 종이에 써줄 테니깐 가져가서 두고두고 봐요. 아가씨는 희생하는 성격이고 이 남자는 자기가 무조건 왕인 성격이야. 그래서 같이 살면 아가씨만 손해예요.
사주 보러 가는 것도 혼자 가는 게 무서워서 동생과 같이 갔는데, 옆에 있던 동생은 계속 아저씨의 사주풀이가 소름 끼친다며 자기 팔에 닭살 돋은 거 보라며 맞장구를 쳤다. 실은 그 자리에서 나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뭘 기대했을까. 그때는 현실 인지도 안 돼서 남편이 미안하다고 자기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다며 내게 무릎 꿇고 싹싹 비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남편이 상담치료를 받으면 나아질까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저씨의 사주풀이는 오히려 인생은 사주 바깥에 있다는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 뒤로는 사주 보는 것을 관뒀다. 내 성격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깐. 뭐 앞으로 가끔 재미로 신년운세 보러 갈 수는 있겠지만.
하지만 아저씨 말대로 사주에 이혼수가 쓰여있지 않다면 대체 나는 어떻게 이 허무한 싸움을 끝낼 수 있을지 막막했다. 정신이 아픈 남자와 그걸 고치기 위해 애쓰는 그의 가족들이 아들 치료에만 집중하는 동안 누구 하나 나와 내 부모에게 정식으로 미안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정작 아까운 내 인생만 속절없이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크게 좌절케 했다. 내가 발버둥 친다고 빨리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 잠시동안 집착을 내려놓는 게 맞다. 그러나 답답함, 무력함, 분노, 억울함은 한데 엉켜서 점점 증오로 바뀌고 있었다. 증오는 내 안에서 조용히 무럭무럭 자라 나를 삼키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나는 진짜로 죽겠다 싶었다. 홍길동의 치료가 잘 되든 안 되든 나만 또 다른 괴물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사주는 끊어놓고 이번에는 쓸데없이 신점을 찾았다. 정신과 치료와 심리상담이 생기기 전에는 신점이나 사주도 오컬트적인 영역에서의 상담치료였겠다 싶었다. 솔직히 이렇게 생각을 바꾸게 된 것만으로도 내게는 엄청난 변화였다. 나는 신점을 1. 비과학적이라서 2. 무서워서 안 믿었다. 돈 주고 괜히 찝찝함을 사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최근 영화 파묘를 본 뒤에 호기심이 조금 생기기도 했다. 이 시간에 변호사를 찾아서 상담받는 게 더 합리적이고 옳은 말이겠으나 그건 어차피 방법론적인 문제라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보기 전에 오컬트 영역의 문을 두드렸다. 사실 그마저도 무서워서 찾아가지는 않고 전화를 걸었다.
이혼을 하고 싶은데 이혼 절차가 쉽지 않아서 답답하다고만 말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 나불거릴 힘도 없었다. 무속인은 나와 홍길동의 생시를 묻지도 않고 딱 이름만 물었다. 잠시 집중하는 듯 침묵을 가진 뒤에 한 마디 했다.
- 이상하네. 어디가 아픈 남잔데. 머리가 아픈가. 아야야 아파 너무 아파.
등골이 서늘해졌다. 심장박동이 급격하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겁이 나서 미리 공황발작 약을 먹어둔 상태였는데도 약효가 전혀 없었다.
- 언니가 이혼하고 싶으면 이혼 생각을 하지 마. 무슨 말이냐면 쓸데없이 힘 빼지 말라는 거야. 언니 남편 어디 많이 아파. 속이 고장 났어. 그리고 다른 여자가 보여. 가까운 미래에 다른 여자 만나서 그 여자 때문에 이혼해 달라고 먼저 찾아올 수도 있어.
- 네? 정신 아픈 남자를 어떤 여자가 좋다고 만나요?
- 어쨌든 여자 아니어도 그쪽에서 먼저 움직여야 이혼이 되는 그림이야. 그때까지 언니 이혼은 방법 없다. 아이고 답답하다. 언니를 생각하면 답답해. 언니가 안 미치려면 이 남자 생각을 안 해야 돼. 어려운 말인데 이혼하고 싶으면 이혼 생각을 잊고 살아. 그리고 언니는 아무 잘못한 거 없으니깐 그만 괴로워하래. 그동안 착하게 살았으니 앞으로도 희망 잃지 말래.
- 저 그럼 이혼할 수는 있어요? 당장 못해도? 제 시간 아깝고 너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요.
- 쉽지는 않아. 그쪽에서 지금 이혼하기 싫은 것 같은데. 아이고 복잡해. 근데 남자가 너무 나쁘다. 이 남자는 자기가 이상한 거 알고 있었어. 언니 다 끝나면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새롭게 살아야 돼. 이런 거 원래 안 믿지? 그러니깐 앞으로도 점 보러 다니지 말고 절을 다니든지 기도를 해. 그래야 언니 마음이 편안해져.
사주는 재미로 몇 번 봤어도 신점은 처음이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걱정만큼 무섭지는 않았는데 전화를 끊고 생각이 많아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 비과학적이라며 믿지 않았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것만 따지며 감정이나 맥락은 무시하던 남편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나조차도 그처럼 과학적인 것만 믿으려고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내 부끄러워졌다.
갓 성인이 된 스무 살에는 내가 되게 어른이 된 것 같았다. 회사를 n년 정도 다닌 서른 중반쯤이 되자 사회는 이렇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지난날의 스무 살은 무척 어렸고 이제는 정말로 어른이 돼서 세상을 다 알 것 같았다. 딱 그렇게 생각했을 때쯤 내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내게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홍길동도 그의 부모님도.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사건을 맞닥뜨리면 사람은 그제야 겸손을 배우나 보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인생에 대해서 다 알 수 없을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신점은 내게 큰 교훈과 생각할 거리를 남겨줬다. 오늘은 적어도 울지 않았다. 여전히 우울하고 슬프지만 내 사건이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같은 인생의 흐름이라면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인생에 대해서 자꾸 증명하고 자연을 정복하려고만 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너무 힘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점도 보는구나. 스스로 확신하며 틀에 가둬놓던 고정관념 속 내가 깨진 하루였다. 자기 전에 파묘 해설이나 한 번 더 읽고 자야지.